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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혁경 등록일시 20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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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기고] 주택정책의 유연성/한국일보

옛 중국에는 두가지의 큰 정치사상이 있다. 공자의 덕치(德治) 사상과 한비자의 법치(法治) 사상이다.

공자는 법이 많아지면 법을 피해가려는 수단들이 그만큼 많아져 결국에는 탈법이 다반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한비자는 추상적인 덕만으로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고 법으로 통제해야 질서가 유지된다고 했다.

법은 적을수록 간략할수록 좋아

공자의 정치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법삼장(法三章)이라는 고사가 내려온다.
한고조 유방(劉邦)이 진나라를 쳐서 항복을 받아낸 후 그 곳 백성들에게 법삼장을 선포했다. 이는 사형과 죄의 유무만을 가리는 3개의 장으로 된 법을 말한다.
갖은 악법에 시달렸던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 이를 반겼다. 이후 법삼장이란 말은 법은 적을 수록 좋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본래 법이란 권장하는 것보다 규제하는 측면이 강하다. 예방기능도 있으나 구속적인 기능이 더 크다.
그래서 법은 적으면 적을수록, 간략할수록 좋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 각종 사회현상에 대응해 여러 가지 법령이 만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법령이 없다면 사회질서의 유지가 힘들다.

부동산관련 법령만 60여개 넘어

주택과 관련해서도 많은 법령이 있다. 주택건설촉진법을 비롯, 건축법ㆍ임대주택법ㆍ국토이용관리법 등 수십가지의 법에 주택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다.
여기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각종 지침까지 망라하면 셀 수가 없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주택ㆍ토지 등 부동산관련 법령이 60여가지나 된다고 한다.
주택관련 법령이 이처럼 많고 복잡하다 보니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법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법령 통ㆍ폐합에 관한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건축법의 통합논의나 주택법 제정 움직임 등이 그런 예들이다.
어쨌든 복잡한 관련 법령을 묶어 간소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법의 간소화는 그만큼 쓸데없는 규제도 줄어들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정책의 운영 측면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곧 경직된 정책운영에서 벗어나 보다 유연하게 정책이 운영돼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보기에 따라서는 법의 통ㆍ폐합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응급처방식의 대증요법 약효 떨어져

올해 들어 정부는 집값이 상승 움직임을 보이고 분양시장에 청약자들이 몰려들자 시장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시장활성화대책이 주를 이루던 것이 하루아침에 상황이 급변해버린 셈이다.
그러나 시장안정대책으로도 집값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국세청의 기준시가 고시를 통해 이를 잠재우려 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된다. 시장이 과열되고 집값이 오르면 이는 걷잡을 수 없는 투기로 확산될 수 있고 인플레를 유발, 결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서민생활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이 과열되는 현상을 방지하려면 미리 어느 정도의 처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음직하다.
그러나 정부정책이 조령모개식으로 급변하는 것은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나 처방 효과면에서 문제가 있다.
응급처방식의 대증요법이 많아지다 보면 약효가 떨어지게 마련이고 처방의 강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더이상 쓸 약이 없어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유연한 정책운영이 필요

이런 현상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이 경직되게 운영되기 때문이다. 정부측에서는 규제완화라는 시장정책의 기조가 바뀌지 않았다고 얘기하지만 실제로 정책의 운영에서는 적지않은 규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는 적어도 주택시장에서만큼은 정부가 시장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지금은 21세기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급속한 변화의 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면 정책운영의 유연성 없이는 안된다.
경직된 정책운영으로 시장의 기능을 떨어뜨릴 것이 아니라 시장의 움직임에 따라 정책을 유연하게 조절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도 시장의 상황에 대해 즉각 반응하기보다는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정책의 유연한 운용이 자칫 시장의 과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많지 않다.
지금은 시장 자체의 기능으로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규제 위주의 경직된 정책보다 시장에 맡겨둘 수 있는 정책의 유연성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김문경<대한주택건설사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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