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도시정비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60년대다.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이 62년 제정됐고 67년 재개발법이 처음 마련됐다. . 그러나 당시의 도시정비는 전쟁 통에 생겨난 피란민들의 무허가 판자촌을 단독 주택지로 재개발하는 수준이었다. . 과밀로 인한 도시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70년대였다. 정부청사와 시청.은행.기업체 본사 등이 도심에 집중적으로 몰리면서 교통체증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 시정개발연구원의 이희정 박사는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해 여의도와 강남이 개발됐다"며 "강남 개발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돈방석''일확천금' 등 사회적인 유행어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 80년대 후반에는 노태우 정부가 '주택 2백만호 건설'을 추진하면서 서울은 전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2백만호 가운데 40만호를 서울에다 지었기 때문이다. 2백50%에 그쳤던 공동주택 용적률이 90년 4월 3백%로, 11월에는 4백%까지 치솟았다. . 이 때문에 노원.중계.도봉.상계.연신내.목동 등에는 녹지가 사라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쏙쏙 들어섰다. 또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주택가는 다가구.다세대촌으로 급변했다. . 문승국 성북구 부구청장(도시설계학 박사)은 "당시 1천가구짜리 아파트 단지를 4백개나 지을 정도로 마구잡이 개발이었다"며 "이웃간 커뮤니티의 파괴 등 주거형태의 변화에 따른 문화적 충돌까지 겪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90년대 초에 출범한 민선 자치구는 재개발.재건축을 중심으로 지역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서울 난개발을 주도했다. 초고층 오피스텔 난립과 마구잡이 구릉지 개발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 백성호 기자<vangogh@joongang.co.kr> --------------------------------------------------------------------- [난개발 몸살 신음하는 서울] 도시계획 무시하고 "일단 짓고 보자"
주상복합-오피스텔 교통난 부채질 관련법규도 구멍 숭숭 규제 역부족
외국인의 눈에 서울은 이상한 도시다. 보기에 멀쩡한 아파트 벽에 재건축을 '경축'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 때문이다. . 강남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는 캐나다인 엘 하워드(59)는 "집이 낡아서 헐린다고 자랑하는 곳은 서울뿐일 것"이라고 비꼬았다. . 이해못할 부분은 이뿐만 아니다. 녹지나 학교 등 생활 기반 시설을 갖추지 못해도 주상복합빌딩이나 오피스텔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주차시설이 부족한데도 초고층 상가타운이 조성된다. 초고층 아파트 단지와 저층의 다세대 연립주택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것도 진풍경이다. .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기호 교수는 "십수년간 지속된 서울시와 정부의 무계획적인 개발논리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며 "엉망이 돼 버린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파행적인 우리나라 사회.경제.문화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주상복합빌딩=건설업자 입장에서 주상복합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분양이 쉬울 뿐만 아니라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어 매력적이다. . 업무용 빌딩의 경우 공사비는 물론 유지.관리비까지 부담해야 하고 경기에 따라 공실률이 달라져 수익을 예측하기 힘들다. . 게다가 주상복합과 오피스텔은 환금성이 보장돼 분양에 어려움이 없고 도로나 주차장 등 기반시설 확보의 요건이 까다롭지 않아 업자들의 구미에 맞는다. . 그러나 도시기반시설의 용량을 초과하는 주상복합빌딩을 마구 짓는 바람에 교통난이 심각해졌다. . 최근 여의도 일대에 주상복합건물이 속속 들어서면서 원효대교에서 대방동으로 연결되는 용호로의 경우 1㎞가 채 안되지만 출.퇴근 시간대에는 40분이 넘게 걸린다. . 더욱이 2005년까지 이 일대에 주상복합건물 7개동 1천3백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평균 차량 속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오는 10월부터 2003년까지 3천여가구의 입주가 완료되는 강남구 도곡동 주상복합단지 주변도 교통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 ◇삶의 질과는 거리가 먼 재개발=성동구 하왕십리 A아파트 단지 앞 재래시장 골목은 아침 저녁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단지로 진입하는 통로가 골목길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 단독주택과 소형 연립주택 단지였던 이곳도 재개발되면서 고층 아파트가 지어졌으나 도로.공원.노인정 등 기반 시설이 입주한 가구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생활환경이 열악해졌다. . 재개발이 사업자의 논리에 따라 진행되다 보니 수익성이 있는 아파트 규모에만 개발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90가구가 살고 있는 단독주택 지역이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될 경우 네배가 넘는 3백62가구가 입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 원주민의 입주능력을 무시한 재개발도 마구잡이개발 악순환의 고리를 이루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의 가옥주 재정착률은 30%에 불과하다. . 결국 입주권을 팔고 밀려난 원주민들을 소화하기 위해 도시 외곽에 또 다른 임대주택을 개발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 경원대 이창수(도시계획과)교수는 "주택보급률 확대 차원에서 장려한 다세대.다가구 건설이 주차전쟁을 야기했듯이 인프라 개선 없이 행해지는 개발은 도시를 망가뜨리면서 땅주인과 업자에게만 이익을 주고 있다"며 개발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제안했다. . ◇난개발 부추기는 당국=서울시가 계획도시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양천구 목동 일대는 지금은 '무계획의 도시'로 전락하고 있다. . 넉넉한 기반시설과 저밀도 아파트 단지로 쾌적한 환경을 자랑하던 이곳은 최근 상업지구에 들어선 주상복합건물 때문에 대표적인 난개발 지역으로 꼽힌다. . 서울시 관계자는 "목동 상업지구는 원래 주민을 위한 편익 공간이었기 때문에 도시계획상 초고층 건물은 예정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건축허가를 내준 구청 측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하게 용적률을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 이처럼 행정기관끼리 손발이 엇갈리는 현상은 허술한 법규 때문이다. 목동 개발 초기 도시계획법은 특정 지역을 상업지구 등 특정 용도로 지정할 뿐 건물 높이를 규제하는 내용이 빠졌던 것이다. . 주거환경보다 지역개발을 우선하는 일선 구청들은 이러한 맹점을 이용해 결과적으로 마구잡이개발에 앞장선 셈이 됐다. A구청 관계자는 "지역 개발과 관련한 주민 민원은 표와 직결되기 때문에 민선 구청장으로선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 놓았다. . ◇앞뒤 안맞는 규제와 엉성한 제도=도심 마구잡이개발이 계속되자 서울시는 2년 전 4대문안의 용적률을 대폭 제한했다. . 상업지구에 건물을 지을 때 8백%였던 용적률을 6백%로 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업성이 떨어지자 업자들은 기반시설 투자를 외면했고 이는 도심환경 악화로 이어졌다. . 중구 순화동 M빌딩의 경우 지하 7층.지상 25층 짜리 건물은 들어섰지만 환경개선 차원에서 계획됐던 인근 서소문 공원과 연계 도로 건설은 이뤄지지 않았다. 주변 지역 전체를 종합적으로 아우른 도시계획이 없었던 까닭이다. . 앞만 보고 달려온 서울이 마구잡이개발의 심각성을 되돌아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도시정책의 기조를 '개발'에서 '관리'로 선회한 것은 2000년 7월 '서울 난개발 방지 도시계획' 조례를 만들면서부터다. 이전에는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으로 규제해 왔다. . 그러나 도시계획법은 용도지정만 할 뿐 용적률 등 구체적인 규제 기준을 마련하지 않아 갖가지 편법이 판치는 빌미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도시와 건축이 따로 놀아 주택가 곳곳에 나홀로 아파트가 생겨났다. . 시정개발연구원 이희정 박사는 "2000년 6월부터 서울시는 2백곳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했지만 독일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지역별 특성과 유형이 매우 단조로운 편"이라며 "회를 뜰 땐 다양한 칼이 필요한데 서울은 부엌칼 하나만 사용하는 격"이라고 밝혔다. . 심재우.백성호.김필규 기자<jwshi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