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시대는 끝났다 / 박인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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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2-12
| 조회수 :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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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욕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은? 넌센스 퀴즈가 아니다. 정답은 '아파트'. 금세기를 통틀어 아니 한국 오천년 역사를 통틀어 아파트만큼 많은 욕을 먹은 건축물도 없을 것이다. 삭막함, 비인간성, 개인주의, 성냥갑, 콘크리트 덩어리 등등 아파트에는 온갖 부정적인 단어들이 따라다닌다. 하지만 한국 역사를 통틀어 아파트만큼 많은 사람들의 선호를 받은 건축물도 없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아파트에 살고있다는 통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난 수십년 이래 지속된 아파트 열기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갖고 있는 공통기억이다.
왜 아파트인가
정부도, 건설업체도, 수요자들도 왜 그리들 아파트에 집착할까? 왜 집 하면 아파트이고 아파트 하면 다 고층아파트인가? 왜 아파트는 다 아파트단지인가? 아파트단지는 빈약한 도시기반시설투자 속에서 주택공급을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아파트단지는 자기 땅에 자기 돈으로 도로와 주차장과 놀이터를 확보하는 주택이니 정부가 기반시설투자 없이 주택공급을 늘리는 데에 안성맞춤이다. 수요자들이 그토록 아파트단지를 선호하는 것 역시 빈약한 도시환경이 빚어낸 일이다. 주차전쟁터가 되어버린 골목, 옆집 벽에 맞닫다시피한 창문, 어디쯤 있는지 모를 멀고 먼 놀이터. 그나마 주차 걱정 없고 한 뼘의 풀밭과 놀이터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아파트단지 뿐이니 말이다. 5층아파트가 15층으로 높아지고, 다시 20-30층의 초고층아파트가 상식화된 것은 "한 채라도 더"라는 주택정책의 욕심과 주택사업의 욕심을 "그래도 아파트단지가 더 낫다"고 수요자들이 용인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파트시대는 열악한 도시환경이 빚어낸 필연이다. 아파트단지는 사막같은 도시환경 속에 자기 돈 들여서 주차장과 놀이터와 풀밭을 갖춘 오아시스인 셈이다.
아파트 제대로 욕하기
그런데 왜 아파트시대를 끝내야 할까? 사막 속의 오아시스를 지긋지긋해 하는 이유는 왜일까? 고층아파트라서? 아파트단지라서? 그래서 무엇이 문제라는 말일까?
아파트를 욕해야 하고 아파트시대를 끝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닫힌 집'들의 모임이라는 데에 있다. 각 집은 복도와 계단실에 대해 닫혀있다. 계단실은 외부공간에 닫혀있고 그 외부공간은 다시 담장으로 닫혀 있다. 닫힌 아파트는 사람들에게 나와서 어울리기보다는 제 집으로 들어가기를 재촉한다. 자기 단지의 담장을, 자기 집의 철제 현관문을 걸어 잠그도록 강권한다. 문을 열어보았자 보이는 것은 답답한 계단실이요 황량한 주차전쟁터 뿐이니 닫고 살지 않을 재간도 없다. 어느덧 아파트는 사막 속에서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꿈꾸는 닭장이 된다.
고층아파트를 탓하고 재개발 재건축아파트단지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보기 싫고 도시를 번잡하게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보다 크고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우리네 삶터를 닫힌 집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닫힌 아파트 짓기는 쉽고도 편리하다. 기반시설투자 없이 입주자 부담으로 주택건설을 늘릴 수 있는 정부는 정부대로, 주변이 논두렁이건 산기슭이건 골치 썪을 일없이 한 층이라도 더 높이고 한 채라도 더 짓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건설업체는 업체대로, 덤핑 설계비에 울며 도면 한 장으로 설계를 끝내고파 하는 설계자는 설계자대로. 모든 이들이 닫힌 집짓기를 편리해 하고 모든 건축법규와 분양제도는 닫힌 집짓기에 맞추어져 있다. 와중에 망가지는 것은 닫힌 삶에 길들여지고 있는 우리네 도시요 우리네 삶이다.
열린 아파트의 시대로
닫힌 아파트의 시대는 끝내야 한다.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찾아 아파트를 좇는 시대도 끝내야 한다. 이제 열린 아파트, 열고 살 수 있는 아파트를 꿈꾸어야 한다. 마당이 있고 이웃과 골목이 있는 아파트, 담장 대신 이웃 동네와 도시에 열린 아파트, 나만의 오아시스가 아니라 이웃과 주고받는 오아시스를.
다행히도 적지 않은 이들이 마당과 이웃이 있는 아파트 만들기에 호의적이다. 미미하나마 기왕의 시도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발코니를 마당으로 설계한 아파트, 주거동 앞에 공동마당을 꾸민 아파트 등.
정작 일을 방해하는 것은 몸에 굳어버린 '닫힌 아파트 짓기'의 관성이다. 기껏 만든 발코니 마당을 철문으로 막도록 강요하는 소방법, 1층집 앞마당 꾸미는 일을 막는 관리사무소, 공용면적 줄이기에 급급할 뿐 살만하고 팔릴만한 공용공간은 엄두도 내지 않는 업체들. 더더욱 어려운 일은 단지를 도시로 여는 일이다. 담장 없는, 이웃에 열린 아파트를 만들자는 데에는 모두들 주춤거린다. 방범문제, 관리문제 등 반대이유도 만만치 않다. 기왕에 있는 출입구 마저 한 두개만 남기고는 막아버리기 일쑤다.
'닫힌 아파트 짓기'의 관성은 심지어 바로 옆에 공원이 있는데도 담장으로 막아버리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제법 많은 공원과 보행전용로를 갖춘 분당, 일산 등 신도시에는 이런 아파트단지들이 즐비하다. 닫힌 공원은 공원대로 쓸쓸하고 공원과 격리된 아파트에서 주차장바닥을 놀이터로 삼고 있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애처롭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역시 '사막' 쪽이다. 주차장 전쟁, 부족한 놀이터에 허덕이는 도시, 줄 것만 있고 받을 것 없는 사막 속에서 '내 돈 주고 산 오아시스'를 담장치고 지키는 데에만 익숙해진 것이다.
열린 아파트가 있기 위해서는 열고 살기를 권할만한 도시가 있어야 한다. 새천년. 또 다시 우리의 도시를 닫힌 아파트로 채우는 대신에 도시의 거리와 집 앞의 골목골목들을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쉽디쉬운 닫힌 아파트 짓기보다야 몇곱절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열린 아파트를 권하는 도시와 그 열린 집으로 하여 더욱 살만해지는 도시. 우리네 도시가 그렇게 가꾸어질 때 아파트의 시대가 끝날 것이다. 담장 안에 아무리 훌륭한 녹지가 있은 들 여전히 사막 속에서 욕먹기 마련일 닭장의 시대가 말이다. (1999.3.19일자 문화일보 <'99 건축문화의 해' 기념 연중 시리즈, 새천년을 여는 건축 프론트라인>에 실렸던 글)
박인석 교수님은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이십니다.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멋쟁이 이십니다. 핸섬하시고, 그의 사고 또한 핸섬하신 분이거던요. 자신의 주장을 펴실 땐 무서움도 엿보이구요. 하지만 그도 우리와 다를 바 없 는 보통 사람입니다.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버지로서의 고민을 갖고 있는 인간적인 보통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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