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전부인 세상은 살 맛이 나겠는가?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2-12 | 조회수 : 204


인간관계는 항상 상대적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자신이 한 일들은 생각지 않고 상대편의 서운한 행동만 원망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게 자연의 이치다.

옛날엔 집안의 원수 갚는 일을 최대의 덕목으로 삼았다. 자녀가 부모의 원수를 갚으면 다시 손자들이 그 원수를 또다시 갚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다. 설령 사람을 죽이는 일일지라도 부모 원수를 갚는 일이라면 도덕적으로는 지탄을 받지는 않았던 때도 있었다.
복수를 이기는 것은 사랑이다. 예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심지어는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복수는 끈질긴 불행을 잉태한다. 스스로 복수의 어두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복수 이외의 그 무엇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에 있었던 이야기다.
2층 단독주택을 건축하는데 뒷집에서 진정이 제기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법을 위반하였으니 처벌해 달라는 내용 이였다. 건축주는 진정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그는 그 동네에서 신망 있는 사람으로서 절대 진정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뒷집에서 제기된 진정임을 알고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럴리가 없다는 것이다. 평상시 호형 호제하며 지내는 사이로서 한마디 상의 없이 진정을 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모든 걸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일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풀리지가 않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진정인은 꾀나 완강했다. 위법의 정도가 경미해서 처벌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가 처벌 받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뒷집에서 장독대를 건축시 지금의 건축주가 동사무소에 신고한 일로 철거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아픔을 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끼리야 지난 일을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부인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원인을 알았으니 치료 방법은 찾으면 된다.
우선 양측의 남편을 한자리에 모았다. 지난 일을 사과하고 남자답게 모든걸 풀자고 했다. 처음엔 어색해 하더니 금방 마음을 풀었다. 저녁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다.
그 다음에는 양측 부인과 남편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미 남편들로 부터 그간의 사정을 전해 들었기 때문인지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큰 분란은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들 처럼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린 모습은 아니였다.

일단은 건축주가 시정할 부분을 시정한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만난다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그 다음엔 마음을 터 논 대화가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양측이 솔직하게 털어 놓는 것이 좋다. 한번에 해결되지 않으면 또 만나야 한다. 감정의 앙금이 걷힐 때 까지 계속적인 만남이 필요하다

일이 어느 정도 추진되고 나서 두 가족이 함께 자리를 하였다.
그 동안의 서운했던 감정을 털어 놓고 상대편의 사과를 받음으로 그 동안의 감정을 씻을 수 있었다. 그 다음의 모든 문제는 일사천리로 해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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