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계(計)는 맨 나중에 해야 할 일이다? |
|
|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2-12
| 조회수 : 703
|
|
|
|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의 무공담(武功談)은 한결같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더니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 승리는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차지하는 몫이다. 목표를 세워서 맹진(猛進)을 한다면 못 이룰 일은 없다고 본다. 피해서는 안된다. 팔을 걷어 부치고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만 있다면 안되는 일은 없다.
건축 진정도 마찬가지다. 이해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대처가 있다면 못 풀 일이 없다. 진정은 발생 초기에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피하고 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고개를 숙이다 손해를 보는 게 아닌가? 무리한 요구가 나올 경우 시간을 끌다 보면 자연히 지치겠지, 공사하는 게 죄인인가? 이런 생각에 회피를 해버린다. 귀찮고 짜증스럽다는 이유로 우선 피하고 보자는 생각과 매사 소극적인 대응만 하려 한다.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진정인의 입장에서 보면 피해를 입은 것만도 억울한데 자신을 무시하는 태도에 더욱 감정이 상하게 된다. 이쯤 되면 피해의 잘못은 접어두고 무시당한 감정 때문에 일은 더욱 어렵게 꼬이기가 쉽다. 말 한마디에 천량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발생된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시인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진정인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건축물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무리하게 변경해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법과 규정에 의한 허가사항을 설명하며 이해를 구하고 건축주의 형편이 허락하는데 까지 양보할 수도 있는 것이고, 설계 과정에서 인접 건축물 들의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서로가 협의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건축 공사 중 일어난 사고도 고의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충분한 보상과 대책을 강구한다면 어떤 사람일지라도 이해 못할 바가 없을 것이다. 실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사후 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동정을 받을 수도 비난을 받을 수도 있는 문제다. 손자병법의 전술(戰術)에서 여러 가지 계책이 있는데 맨 나중 계책인 36계는 줄행랑을 치는 것이다. 1계에서 35계까지 전술을 구사하고도 도저히 되지 않을 경우 마지막에 택할 수 있는 계책일 뿐이다.
1984년 여름은 물난리가 나서 강동구 일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있었다. 명일동에 M교회의 건축 공사 중 지하층을 굴토한 상태에서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그 비로 인접한2층 단독주택이 붕괴할 지경이 되었다고 할머니가 구청을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다. 시공자나 건축주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설령 시공자가 그 상황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방법이 없었지만 그 할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사고 현장에서 날밤을 세우기로 하였다. 밤새 비를 흠뻑 맞고 옷과 신발은 엉망이 되었다.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 탈이 없었기 망정이지 만약 건물에 균열이 가거나 붕괴되粹捉?하였다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필자의 눈물겨운(?) 정성에 감복을 하였던지 커피 한잔을 타 주면서 미안해 했다. 만약 귀찮다고 그 일을 회피하였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나중에 건축주와 시공자가 나타나 마무리를 쉽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밤을 세우며 나눈 많은 시간이 없었다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같은 마을에 수년을 함께 살았더라도 자신의 건축물에 피해를 입게 되면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그 일로 진정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동안 충분한 대화가 있었다면 진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못 풀일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건축주는 진정인의 입장에서 진정인은 건축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은 가급적 초기에 풀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곪아 터진다. 헝클어진 실 타래 처럼 풀기가 어렵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또 다른 억척을 불러 일으켜 상황을 복잡하게 이끌고 만다. 정당하게 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는데 왜 자신이 진정을 해결해야 하느냐고 항변을 하기도 한다. 법과 규정을 집행해야 할 행정기관이 너무 힘이 없어서 오히려 정당하게 허가를 받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항변도 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법과 규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법 이전에 중요한 것이 도리(道理)라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의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것이다. 건축주로서의 도리가 있고 이웃으로서의 도리가 있는 것이다. 법과 규정은 가장 나중에 따져야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고려하여 법과 규정을 만들지는 못한다.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그에 맞는 규정을 미리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편적으로 예측 가능한 상황을 설정하고 만든 법과 규정만을 앞세워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가장 나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공사 전에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양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건축법에 의한 허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공사 중에 먼지를 날릴 수도 있고, 도로 통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사 소음도 무시할 수 없는 피해다. 어찌하다가 공사를 잘못하여 균열 등의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법과 규정으로만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