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야경(夜景)- 어떻게 연출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1-21 | 조회수 : 57


□ 서울 야경의 실상?

서울의 밤거리는 어둡다. 한마디로 볼거리도 빈약하고 이야기거리도 없는 서울의 밤에서 아이덴티티(Identity)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파리'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유행과 패션의 도시, 쑈윈도우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샹제리제 거리는 파리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홍콩의 현란한 야경은 자유 무역도시의 상징으로서 관광수입을 올리는데 톡톡히 한 몫을 한다. 파리와 인근한 리용은 야경을 체계적으로 연출하여 파리로 빼앗긴 관광객을 돌려 놓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서울'하면 떠오르는 게 무엇일까? 정말 서울은 볼거리가 없는 도시인가? 문화나 정취가 없는 단순 기능의 도시인가? 절대 그렇지가 않다. 서울은 세계적으로 거대한 도시의 하나이지만 600년의 역사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지닌 자원이 무궁한 도시이다. 서울의 한강이 파리의 세느강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도심 한가운데 북한산과 남산을 갖춘 도시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경복궁·덕수궁 등의 5대궁과 남대문·동대문·남한산성 등의 역사적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도시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잘 다듬고 포장을 할 줄 몰라서 방치되고 있을 뿐 찾아보면 놀랄 정도로 훌륭한 자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얼마나 아름답고 보기좋게 다듬느냐에 따라 서울이라는 이미지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주간경관(晝間景觀)을 위해서는 오래동안 다각도의 연구를 통해 법제화 제도화한 부분이 적지 않다. 계속적으로 보완 발전할 것이다. 반면에 야간경관(夜景)에 대해서는 거의 드러내 놓을만한 정책이나 시책이 없다. 종합적 체계적인 계획이 없이 개별적 산발적으로 조명시설을 설치한 건축물들이 들어서고 있는 정도이다.
서울이 갖고 있는 다양한 자산(자연과 문화재 등)을 야경연출과 연계할 수만 있다면 세계적으로 손상없는 도시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어느 도시이던지 그 나름대로의 인상을 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 도시, 다시 찾고 싶은 도시, 오랫 동안 기억 되는 서울을 만들기 위해서 야간경관을 정책으로 채택해도 좋은지를 검토하게 되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 대부분의 야경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도시 연출가의 각본에 의해 의도적 계획적으로 연출된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의 경우도 야경을 아름답게 꾸미고자 한다면 연출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 빛의 역할

빛은 과연 무엇인가?
빛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너무나?단순한 질문임에도 쉽게 답할 수가 없다. 빛은 어둠으로부터 탄생되어져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빛과 어둠은 절묘한 관계를 유지한다. 인간이 자연을 거스리는 최초의 역사가 불이요 빛인 것이다. 빛은 밤의 문화를 새롭게 하는 역할을 주도한다. 밤의 시간은 결코 물리적인 길이로만 이해될 수는 없다.

1879년 백열전구의 발명은 밤의 역사를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밤은 정신적 육체적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간대로서 세상의 역사가 밤에 이루어질 정도였다.
'어둠의 세계에서 인공의 「빛」은 미지(未知)의 세계를 밝히는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새로운 빛의 출연은 인간들은 감동시켰으며, 그 때마다 생활과 문화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빛은「평화의 상징」「따뜻함」으로 인식되며, 종교에 있어서는 매력 만점의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서의 빛은 밤의 생활을 연출하는 도시적 기반시설로 자리잡기 시작했다.(도시의 야간경관 연구회/일본 대성출판사/1994.8/都市の 夜間景觀の 演出)



□ 야경의 역할?


도시에서의 야경은 도시환경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야경시설의 개선은 단순히 물리적 개선뿐만 아니라 경관이라는 심리적·예술적·문화적인 환경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단순히 다룰 문제는 아니다.

종래의 조명은 다분히 경찰적인 안전성과 통행이라는 기능적인 면에서 발전되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성장을 목표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야경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가로등과 간판이 조명의 전부였다. 그나마 에너지 절약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그 이상의 역할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1만불시대에 들어선 1990년대 하반기에 이르러 정신적 문화적 환경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야간 경관에 대해서도 이래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었다. 단순히 경찰기능과 산업기능의 조명에서 서서히 도시경관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경제성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양화되고 고급화되면서 이용 시간대도 증가되어 종래의 조명이 갖는 기능만으로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하던 야경의 역할은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 있어서의 야경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도시의 안정성면에서 방재나 방범의 역할을 한다.
② 밤의 도시환경을 아름답게하는 쾌적성 면에서 밤의 분위기와 정서적인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③ 도시의 문화·역사물의 예술적 가치 혹은 품위를 높이게 한다.
④ 도시의 형태나 기능을 명확하게 한다.
⑤ 상업활동에의 진흥,공공설비의 친목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박경훈/도시의 조형환경을 위한 조명연출의 개선방안 연구/서울시립대학교 석사논문/1997)



□ 서울의 주간대 경관 정책

한 도시의 경관은 그 도시의 문화에 대한 품격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이다. 도시에서의 중요 경관은 자연경관과 인공경관(문화재 또는 문화경관 포함)으로 대별되어질 수 있는데 두 개의 경관이 각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조화를 이룰 때 최상의 경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 서울에서 도시경관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에서 부터였다. 그러던 것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10월 도시경관과를 설립한 것이 아닌가한다. 도시경관에 관한 다양한 정책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 정책의 모두가 주간대의 경관에 관한 것들이었다.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도시계획법에 의한 미관지구, 고도지구, 풍치지구를 지정하여 관리하는 방법이 있고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도시설계지구나 상세계획구역, 아파트지구 등을 지정 해당 지구별 세부설계를 통하여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강변이나 구릉지, 산자락 등 자연경관이 양호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의 경우는 건축심의를 통하여 확보하려 하였다.

한편 문화재 주변은 문화재보호법에서 정하는 일정한 기준에 의해 건축물이나 구조물로 인한 시각적인 차단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지만 이도 소극적인 대응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개별적 산발적인 방법으로는 경관을 유지 확보할 수 없을뿐더러 효율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 체계적인 경관관리기본계획의 수립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서울시에서는 1995년부터 1998년도까지 시정개발연구원으로 하여금 경관관리 기본계획수립을 위한 연구를 의뢰 3권의 보고서가 작성 발표한 바 있다. 현재 도시계획법의 개정 추진과 경관조례 제정을 위한 준비중에 있다.

1990년 UN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세계대회를 개최하여 「Local Agenda 21」(지방의제 21)계획을 수립 추진하기로 결의하여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르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을 목표로 「Agenda 21」을 결의하였다.
여기서 지속 가능하다는 것은 '자원의 사용은 미래 세대의 자원활용 가능성을 감소시켜서는 안되며, 환경은 보전되어야 한다'(1987년 Brundtland 보고서에서 제시됨)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다른 말로 녹색도시, 살만한 도시, 자연도시, 무공해 도시, 환경모범 도시, 환경공생 도시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에서도 1997년 6월 5일 제25회 세계환경의 날을 맞아 「서울의제 21」을 선포하였다. 365개의 행동계획을 세우고 그중 서울시를 비롯하여 행정부가 할 일(157개)과 시민이 해야할 일(123개)로 구분했다.

도시 주택분야에서는 「시민이 함께 만드는 쾌적하고 친숙한 도시」를 목표로 계획인구를 환경친화성 차원에서 산정하고, 개발의 한계를 환경용량을 충분히 고려하여 정하겠다고 하였다.

이처럼 다양한 여러가지 경관정책이 주간대의 경관만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한계점을 노출하게 되었다. 도시문제는 어느 한편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 서울의 야간대 경관 정책?

서울 야경에 대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은 어느 부서에서도 다룬적이 없었다. 간헐적으로 남대문·동대문 등 중요 문화재를 중심으로 야경개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민간부문에서도 몇몇의 건축물들이 조명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분위가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서울 야경에 대한 계획을 검토하게 되었다.

서울에서의 밤풍경은 일반적으로 자동차 헤드라이트, 가로등, 상점의 간판 불빛으로 만들어진 그야말로 특색없는 야경일 뿐이다. 개발 일변도의 성장 정책은 내핍을 강조하였고 그 결과 과다한 에너지가 소요되는 환경조명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한 때는 네온싸인의 설치를 금하며 야간 광고시간을 제한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1996년부터 숭례문(남대문)을 비롯하여 동대문, 보신각, 돈화문 등 문화재의 조명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자 일부 민간 건축물들도 자사의 이미지 향상을 위해 야경연출을 시도 하기 시작하였다. 포스코 빌딩, 잠실 롯데 월드, 동대문 시장에 위치한 거평 프레야, 압구정의 갤러리아 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KBS본관 등의 야경이 볼만하다.

1997년에 들어서는 성수대교와 신행주대교의 야간 조명시설의 설치로 교량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한 최초의 일로 기록될 것이다. 파리의 센강을 가로 지르는 각종 다리의 조명이라던가 동경의 베이 대교에 대한 조명이 대표적인 교량조명이라 할 수 있다. 빛과 물의 어울림은 빛의 효율성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새로이 조성하고 가로조명을 설치하였으며 독립문과 세종문화회관도 새로운 밤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다는 것은 공공분야의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다.

서울시에서는 야간 경관개선계획을 1997년도 기본사업에 포함시켜 추진하였다. 서울시립대학교와 함께 야간 경관 개선을 위한 기본 방향과 추진 방법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1998년이후부터는 가시적으로 조명시설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IMF경제 한파로 말미암아 이의 추진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너지 절약차원에서 네온싸인과 전광판등의 전력을 10%이상 절약한다는 명분으로 경관조명시설의 설치에 관한 업무를 일단 중置玖庸?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연구중인 기본계획의 연구는 계속하여 1998년 6월 그 보고서가 제출되게 되었다. 2000년 아셈(ASEM)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대비 서울에 몰릴 외국인을 생각한다면 점진적이나마 야경개선계획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 쉽사리 결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 우리나라의 야간 경관조명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경관조명이란 용어가 사용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가 않았다. 경제성장과 야간생활 환경의 급격한 변화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야간활동 인구의 증가, 활동 시간대의 증가에 따라 생산과 산업 부문의 질적 증가와 소비와 향락 산업 부문에서의 양적 팽창의 결과로 나타났다.

공공부문에서는 가로등이나 보안등의 설치를 확대하고 기존의 조도를 향상시켜 거리를 밝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해왔을 뿐 특별한 야경의 개선을 위한 조치는 없었다. 다만 민간부문에서 유흥가를 중심으로한 네온싸인 등 간판들이 야간의 분위기를 주도해 나갔을 정도이다. 차량의 증가에 따른 헤드라이트가 연출하는 야경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부문이었다.

그러나 이들 요소는 처음부터 무계획적 방임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가로나 지역적인 특징이 없었다. 경관조명이라 이름 붙일 수준이 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야 했었다.

1981년 9월 '88 서울올림픽 개최의 결정, 동년 11월 '86 아시아 경기대회의 결정과 이듬해인 1982년 1월 5일 야간통행금지의 해제결정은 야간환경의 개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초보적인 야간경관을 생각하게 된 원년으로 잡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초창기에는 그 수준이 극히 미약하였고 다만 치안 차원에서 다루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로등의 밝기에 대한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1988년 이전에는 20룩스도 되지 못하였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20룩스로 높였으며, 1992년부터는 가로등의 약 20%를 30룩스로 조정한바 있다.
1997년부터 2000년 까지는 전체의 42.5%인 39,705등에 대해 30룩스 이상을 목표로 개선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노윤우/야경이 아름다운 서울거리를 만들자/ 월간 서울 97. 4)

'86 '88 국제적인 양대 체육행사를 준비하면서 몇몇 건축물들이 자발적인 경관조명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지만 그리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림픽의 식전 식후 행사를 통해 펼쳐진 빛의 잔치에서 많은 사람들은 빛의 마술을 기억하게 되었다. 1994년 대전에서 개최된 엑스포의 각종 전시관에 설치된 조명시설은 빛이 밤을 어떻게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장관이었다.

행정기관에서 야간경관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한 것은 과천시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과천시에서 '야경연출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이 1994년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실제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도 부터인데 다소의 문제점이 있음을 실무자는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이 야간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 몇 년이 지나서 서울시를 비롯하여 창원시 등 일부 도시가 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 세계 경관 조명의 역사

17세기 프랑스 파리에 루이 14세가 길가의 모든 집의 창문에는 밤 9시 이후부터 새벽까지 불을 켜두게 하였는데 이것이 경관조명의 최초의 역사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치안이 목적이었지만 은은한 가스등을 따라 이루어진 가로 풍경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 후 램프를 이용한 가로등으로 변하였다가 전기를 이용한 가로등과 상업활동을 위한 조명시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파리가 「빛의 도시(Ville Lumier)」로서 유럽 전역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으며, 경관조명이 선진도시와 관광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 프랑스

루이 14세 때 프랑스의 문화는 절정기를 이룬다. 파리시의 야간조명은 유럽에 있어서 문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 營첼?만들어진 파리시의 공식 안내서에는 4조명의 효과로 ①도시의 미관 ② 생활 시간과 공간의 확대 ③ 안전의 세가지를 들고 있는데 오늘날의 조명효과와 그리 다를바 없다.( 정강화/도시 야간 경관의 연출/1997)

1879년 백열전구의 발명으로 생활패턴은 물론 산업 전반의 변혁을 가져온 계기가 되었다.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 파리만국박람회를 개최하게 되었고 에펠탑에 수많은 백열전구를 달아 파리를 밝혔던 사건은 경관 조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스트라스부르 대사원을 육군의 투광기로 비추었고 10년이 지난 1928년 종년 기념일에 에트와르 광장의 개선문을비췄다. 파리의 경관조명의 성숙기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8년부터로 볼 수 있는데 절정기로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인 1989년 파리시내의 중요 고(古)건축물에 집중적인 조명을 비춤으로 빛나는 밤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세느강변을 따라 들어선 건축물과 각종 교량을 비롯하여 에펠탑, 노틀담 사원, 오르세 미술관, 개선문, 부르봉 궁전, 시청사, 오페라좌, 상제리제 거리 등 약 120개소에 약 1만대의 투광기를 설치하여 비추고 있는데 국경일이나 축제일, 외국 국빈의 방문이나 국제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시간을 연장하여 밝힘으로 도시 이미지를 적극 제고시키고 있다.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구 41만의 리용이라는 소도시에서는 1989년 시장으로 출마한 미셸·노이어 시장이 아름다운 '밤의 도시(The City of Night)'를 만들겠다고 선거공약을 제시하여 당선되었다. 5매년 투자 예산의 1.5%씩을 5년간 집중투자하여 공공 건축물을 시작하여 일약 경관조명을 대표하는 도시로 탈바꿈하였다.

리용시의 도시계획국에 경관조명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프랑스 제일의 조명 디자이너인 아랑 귀로를 비롯하여 도시계획가, 사회학자, 조명기구 제작회사, 공공투자가 등 전문가 집단을 참여시켜 150여개소의 건축물, 교량, 공원 등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밝혀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변화 시켰다.(LYON·city of Light/리용시의 홍보 팜플렛)

1989년도 리용시가 이의 추진을 위해 세운 주요계획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① 공공기능의 조명 강화(특히 도로 조명의 개선 - 보행자를 위한 더 많 은 배려와 조명 기구의 디자인 향상)
② 크고 작은 문화유산에 대한 라이트 업(Light up)
③ 리용시 당국과 여러 전문가들의 공동작업
④ 조명 계획의 재정문제에 대한 의견 수렴
⑤ 조명 대상지 근처 주민들과의 협의 .(정강화/위의 글)

2. 영국

파리에서 출발한 경관조명이 런던에 도입된 시기는 1930년대쯤이다. 1970년 테임즈강 주변의 야경을 개선하기 위한 「Light up Thames 계획」을 수립하여 서쪽의 알버트 다리에서부터 동쪽의 타워 다리까지 약 8km에 이르는 강변을 따라 들어선 교량과 전통건축물에 대하여 조명시설을 설치함으로 대표적인 야경을 조성하였다.

이는 침체된 템즈강변을 되살리기 위하여 시민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자하는 런던시청 도시계획국의 의도가 맞아 떨어진 결과이다. 1973년 오일쇼크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한 시민들에 의해 중단됨 없이 계속되었다는 사실과 현재에도 세계에서 뛰어난 야경으로 자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당초 200여개소의 대상지를 선정했으나 런던 탑, 세관, 국회 의사당, 왕궁, 왕립병원 등 100여개소로 축소 선정하여 1975년도에 조명시설의 설치를 완료하였다.

이 계획을 추진하기전에 전력공단에서 템즈강변을 조명하는 경우의 가능성과 장래성에 대해 연구조사를 하여 런던시에 제출하게 되었고, 마침 템즈강변의 복권계획을 생각하고 있던 런던시의 의도와 맞아지게 되자 적극적인 지원을 표명하게 된 것이었다. 전 런던 시장이었던 피터 스튜어트경을 의장으로 하는 위원회가 발족되어 관련 공공기관과 해당지역 건물의 소유자들 간에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실제 일을 담당하는 데는 두 개의 그룹이 조직되었다. 하나는 디자인그룹으로서 시의 도시계획국 국장을 의장으로 하여 조명 디자이너, 엔지니어 등의 조명전문가, 건축가, 도시계획가가 참가하여 구체적인 계획안을 작성하였으며, 다른 하나는 프로젝트 메니저먼트를 담당하는 그룹으로서 디자인그룹이 만든 안을 실제로 시공해 나가는 행동그룹이었다.

3. 일본

1920년대 일본에서는 「都市美 運動」이 일어났다. 1931년 국회의사당에 투광조명을 설치한바 있으나 2차세계 대전의 발발로 등화관제를 실시하는 등 외부조명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수은램프가 보급되기 시작한 1952년에는 대판성(大阪城)에 투광조명을 설치하였고 1958년에는 동경타워의 설치를 기념하기 위한 조명시설을 설치한 것이 경관조명의 실적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 말에 들어서야 도시경관에 관한 시민들의 인식이 새로워지고 행정기관들도 여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일본의 경관조명은 유럽과 달리 15년정도의 역사밖에 갖고 있지 않지만 몇몇 도시에서는 괄목할만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기 시작한 것은 1985년부터이다. 71986년도 요코하마가 대규모의 도시적 실험을 거쳐 상설화한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그 후 전국각지에서 도시재개발, 지역재정비를 통해서 야간경관의 중요성을인식하게 되었고 연이어 도시의 심볼이 될만한 건조물 등에 조명장치를 설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야경을 연출하는데 있어 매우 효과가 있었고 관광자원으로서도 의의있는 수법으로 정착하기 시작했다.(姬路市/姬路市の 都市環境照明の 基本計劃策定 調査報告書/1993)

주간경관에서 야간경관으로 그 범위를 점차 넓혀가기 시작한 요코하마시는 1986년 부시장을 회장으로 한 야경연출사업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1995년 도시계획국 도시기획부 도시디자인실 내에 추진 사무국을 설치하여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에 완성된 베이다리에 조명시설을 설치함에 따라 젊은이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을 받고 주변이 관광명소화하는 등 대성공을 거둠으로 더욱 조명에 관한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다. 야경연출사업추진위원회에서는 역사적 건조물로서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것과 조명연출효과가 있다고 인정하는 건축물등에 대한 조명시설을 권장하면서 조명기구의 설치 및 보수관리에 관한 비용의 2/3를 위원회에서 부담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요코하마시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반드시 조명계획이 포함되도록 하고 있다.

히메지시의 경우도 주목할만하다. 1993년말에 히메지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것을 예상하고, 히메지성의 조명디자인의 개수와 함께 성 주변의 조명시설을 추가 설치하게 되었다. 주중과 주말의 조명 패턴을 달리하고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광원을 바꾸어가며 재미있는 변화를 연출하고 있다. 히메지시는 시 전체에 걸쳐 도시환경조명 마스터플랜을 작성하고 체계적 계획적으로 추진하게 되어 괄목할만한 야경을 연출하고 있다.

히메지성을 중심으로 자연, 역사, 전통, 문화, 생활을 대상으로 알기쉽게, 아름다웁게, 친근감 있게, 그 장소에 어울리는 조명을 설치한다는 기본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히메지시의 light scape의 컨셉을 살펴보면 다음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알기쉬움
도시부,교외부의 조명의 분류를 만들어 지역성을 명확히 함
② 아름다움
城 의 아름다움,드러나지 않는 지역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지역의 활성화를 도모함
③ 친근감
방문자(관광객), 시민의 양면에서의 매력적인 경관을 창출함
④ 그 장소에 어울림
각 지역의 특성을 창출해 내는 조명환경으로 만드는 동시에 지역의 행사, 이벤트와 연동시키는 등의 운용면에서의 연구를 함(히메지시의 조사보고서)

그 외에도 오오츠, 나라, 오이타, 하코다테시 등에서 여러 형태의 경관조명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경관조명 개선을 위한 전략


1. 문제의 제기?

볼거리가 없다는 서울의 야경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인식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야간 경관을 개선해야 하는가 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앞에서 살펴본 대부분의 도시가 행정기관이나 주민들과 행정기관의 공동협의체등을 통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令돛岵막?추진하였다는 것이다. 런던이나 리용, 요코하마시에서와 같이 시민들의 참여 없이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일이다.

서울시에서는 시민 300명을 상대로 도시경관과 야간경관에 대하여 여론을 조사(1996.10)한 적이 있었다. 응답자의 60.0%가 「서울의 경관이 좋지 않다」고 답변하면서도 「야간경관을 별도로 조성할 필요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61.3%(184명)인 반면 「필요하다」고 답한 경우는 38.7%(116명)로서 저조했다. 이는 「야경도 좋지만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특별히 필요치 않다」라는 유도성 질문에 야경이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주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야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한 경우 그 대상에 있어서 「가로수나 한강다리」에 우선적으로 조명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32.8%(38명), 「남대문 등 문화재」에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28.4%(33명), 「도심의 대형 건축물이나 건축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에 우선해야 한다는 경우가 12.1%(14명)에 달했다. 그 이외에도 조명에 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여 조명수준을 전반적으로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야경의 불필요성을 답한 사람이 61.3%로 많았음에도 야간경관의 개선 필연성을 도외시할 수가 없었다. 서울은 수도로서의 기능도 중요하지만 세계화 국제화에 있어서 서울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또한 시민들에 대한 도시 어메니티(Amenity)를 제공해야할 서울시의 입장에서도 야경의 개선을 그 한가지 사업으로 추진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1997년도 사업계획에 이를 포함하게 된 것이다.

2. 추진방향의 설정

하나의 정책을 새로이 추진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행정관료들의 사고가 전환되지 않으면 안된다. 어둡다면 등을 추가하여 밝히면 되지 무슨 경관조명이냐는 인식을 갖고 있는 내부의 변화를 꽤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경관조명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또한 현실의 정확한 분석이 필요로 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립대학교(김기호,조경진 교수)에 연구를 의뢰하였다. 국내외 사례의 조사와 야경연출을 위한 도시 건축적인 기준과 원칙을 정하고 개략적인 야경조성계획을 구상토록 요구하였다. 조명개선을 위한 년차별 전략지점의 선정과 방향을 설정하고 법과 제도의 개선안 등을 연구하게 하였다.

연구용역과 별개로 자체적으로 서울 야경을 촬영하였다. 점(點), 선(線), 면(面)적인 각도에서 실제 밤거리를 다니면서 촬영을 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어둡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몇몇의 특정한 건축물은 자사 이미지 제고를 위해 조명시설을 설치하였지만 지역적인 연계성이 없어 오히려 지역환경을 저해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도시에서의 선과 면적인 차원에서는 볼거리가 거의 없었다.

당초 계획에 의하면 연구결과가 제출되는 1998년 6월 이후에는 몇 개소의 시범설치 대상물을 선정하고 1999년 상반기중에 조명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하기로 하눼? 운영중 도출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강구하고 그 범위의 확대여부를 추가 검토키로 하였다. 그러나 IMF 경제한파로 이 모든 계획을 경제사정이 회복하는 시점까지 연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할지라도 시민이 원하지 않고 이해하지 않는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3. 경관 개선 전략

품위있는 야경은 완벽한 각본에 의한 철저한 연출을 바탕으로 한다. 연출은 단순 정비와는 다른 차원이다. 연출의 목적은 작가의 의도를 관객에게 전하기 위한 효과적 행위로서 관객의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해 다양한 수법을 창조적으로 구사하는 것을 말한다. 가로경관의 실례를 든다면 그 가로경관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 어떤 의도를 전하고자 하는가 하는 물음에서 출발하게 된다.

정비와 같이 반드시 고치고 준비하는 목적과 결과로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는 포장도 하지 않고 전주를 그대로 두고 골목길도 구불구불한 채로 그대로 두며 광고간판도 철거하지 않을 수 있다. 연출기법은 기존의 방법과 개념에 얽매지 않는 자유스런 발상과 수법으로 표현하는 총체적인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정비라고 하면 기존의 요소를 가능한 한 조사·분석해서 부족한 점을 채워 넣는다고 하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다른 도시와 거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도시 특유의 매력과 개성을 현실화 하는 작업에는 잘 이루어진 정비의 측면과 함께 창조적이고 전략적인 연출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정강화/위의 글)

서울의 야경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를 위해서는 우선 서울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들이 서울로 인식되고 있는가를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파리와 홍콩의 밤이 갖는 이미지와 서울의 밤만이 갖는 이미지가 다르듯이 나타내야 하는 방법과 기법에서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울은 그 면적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전체에 대한 야경을 연출하겠다는 생각은 실현가능성이 없다. 또한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반드시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경은 조망점과 조망범위에 따라 점(點) 선(線) 면(面)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근접하여 느끼는 분위기와 원경으로서의 분위기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이것을 결정하는 요인을 조사하고 연출방법을 결정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우면서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야경의 대상지 선정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데 보편적인 사람들의 인지도가 높은 곳과 정책적으로 특별히 육성발전시켜야 할 곳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 같다. 1995년 서울시 주택국에서 변화하는 서울모습을 주기적으로 기록해두기 위하여 사진촬영을 한적이 있었는데 촬영지 선정을 위해서 서울시민들을 상대로 인지도를 조사하였다. 물론 그 전에도 여러번의 서울 이미지를 조사한바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곳을 살펴보면 점(點)적인 요소로 경복궁, 남대문, 덕수궁, 동대문, 창경궁 등의 문화재와 교보빌딩, 롯데월드, 무역센타, 서울역, 시청,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63빌딩, 남산타워, 성수대교, 한강대교 등의 건축물이나 교량에 대한 인지도가 높았으며, 선(線)적인 곳으로는 대학로, 세종로, 압구정로, 올림픽 대로, 을지로, 이태원, 인사동, 종로, 테헤란로, 퇴계로 등을 꼽았다.
면(面)적인 곳으로는 국립묘지, 명동, 목동 신시가지, 서울대, 신촌, 여의도, 올림픽 공원, 잠실운동장을 들었다. 한편 자연 경관 요소로 관악산, 남산, 북한산, 한강등을 꼽았다.

물론 이러한 요소가 모두 야간에서의 인식도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의 요소는 야경을 개선할 경우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야경연출을 위한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 위의 요소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다음의 몇가지 사항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① 도시에 인접한 산이나 고층빌딩,전망타워 등 높은 시점에서 본 도시의 전경
② 먼곳에서 본 도시의 스카이라인
③ 어느 시점에서 건축물의 배후,길이나 강을 통해 보여지는 고층건물이 나 타워 등의 조망
④ 교차점 등으로부터 멀리 넓게 보여지는 변화하는 야경
⑤ 보도에서 서?본 길의 야경
⑥ 주행 중의 차, 열차안에서 보여지는 변화하는 야경 등이 있는데 이들을 계획 대상의 범위에서 다룬다면 ①②는 도시지역차원으로, ④⑤는 거리,지구 차원으로, ③⑥은 쌍방의 차원에서 계획되어야 하는 것이다.(도시의 야간경관 연구회/일본 대성출판사/1994.8/都市の 夜間景觀の 演出)

서울의 중요 대상을 상대로 야경을 연출하게 된다면 다음 몇가지 방향에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① 야경 파노라믹 경관의 연출
중앙청을 중심으로 한 세종로의 빌딩군이나 을지로 오피스 빌딩가, 여의도 증권가, 테헤란로변 등 고층 빌딩군을 비춤으로 거대한 야경을 연출할 수 있다. 거리가 비교적 먼 곳에서도 하나의 면(面)으로 나타나는 야경이 펼쳐질 것이다.
② 야경 스카이라인의 연출
63빌딩이나 무역센터 등의 건축물, 남산타워나 남한산성 등 어디서나 가시되는 시설물을 비춤으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할 것이다.
③ 도시구조가 들어나게 연출
한강의 교량이나 강북강변로, 올림픽로, 테헤란로, 예술의 전당로, 종로 등 가로를 따라 현재의 조도를 향상하고 색다른 광원으로 가로별 분위기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④ 특징적인 시설물의 부상을 고려한 연출
덕수궁이나 창덕궁 등 문화재에 대한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관광객의 유치를 위한 야간 개장과 이에 따른 이벤트를 구상하고,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등 공연 전시 이벤트와 연계한 변화하는 조명시설의 설치, 탑골공원이나 남산공원 등 야간공원의 개장을 염두에 둔 조명, 무역센타 광장이나 서울역광장 등 다중 집합소, 가회동이나 인사동길 등 특징적인 장소나 시설물을 돋보이게 함으로 새로운 명소로 환경을 바꾸는 연출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서울시립대/조경진,김기호 교수)



□ 향후 전망


문화는 경제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꽃이다. 부강한 나라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우리는 과거 30여년간 경제 하나만 매달려 쉴틈 없이 달려왔다. 많은 것을 얻은 반면 잃은 것도 너무 많았다.

서울은 600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도시로서 손색이 없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서울을 돋보이게 해야 한다. 보일 곳을 조명을 하여 더욱 돋보이게 하고, 가려야 할 곳은 환경개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000년 ASEM과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우리나라, 서울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아름다운 밤거리를 연출하여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 관광상품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조명과 인테리어 9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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