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가 교회를 바꾸다니...........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4-4-27 | 조회수 : 93


장로가 다니던 교회를 바꾸다니.....

장로는 교회를 다스리는 자입니다. ‘다스린다’는 말이 다소 거부감이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의 모든 일을 매끄럽게 이끄는 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 장로는 계급이나 직위가 아닙니다. 흔히들 명예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분명히 말해서 명예직도 계급도 아닙니다. 일꾼입니다. 다른 성도들보다 더 많이 봉사해야 하는 부담의 자리입니다.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는 목사의 목회방침이 제대로 집행되도록 도와주는 자가 장로이어야 합니다. 수레의 앞뒤 바퀴로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일부 교회가 그러지 못해 사회적인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대립하는가 하면, 장로와 장로가 대립하여 교회가 혼란하거나 분열되기도 합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 걸고 싸우고 있답니다. 독재를 한다. 예산을 함부로 사용한다. 누구를 편애한다. 말씀이 생명력이 없다 등등 이유도 가지가지 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주님이 뭐라고 하셨나요? 성경 66권 어디를 둘러보아도 ‘사랑’이외의 다른 말씀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덮어주도록 명령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교회라면 몰라도 주님을 몸 된 교회로 삼는 곳에서는 그래서야 되겠습니까?
참을성이 없어서,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편협됨 때문에, 상대편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간 것 같습니다. 저는 2001년도에 성민교회에서 피택되어 2002년 5월 장로에 취임하였습니다. 150여명의 성도가 열심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가족 같은 교회입니다. 40일 금식기도를 2번이나 하신 목사님을 분열되었던 우리교회를 살리도록 청빙하신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교회가 안정을 찾게 되고, 그동안의 빚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새롭게 도약하기 위하여 5명의 장로와 10명의 권사를 새로이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해  12월, 2명의 장로가족과 5명의 권사등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서로 참고 더 기도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교회를 떠난 분이나 남아있는 사람들의 가슴은 매우 아팠습니다. 그 이후 다시 안수집사님과 몇 명의 성도들이 떠나가게 됩니다. 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남은 성도들은 눈물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이 그렇게 어렵고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1년을 지나면서 더 이상의 고통을 감내할 자신을 잃은 저는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장로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봅니다. 교회에 상처를 주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사무총회를 준비하면서 교회를 떠날 것을 목사님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결심하기까지는 힘들고 어려움이 적지 않았습니다. 대화가 없었습니다. 외로웠습니다. 상처가 아물기 전에 다시 입은 상처가 나를 아프게 했습니다. 대화의 단절이 치료를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낀 막다른 골목에 혼자 선 심정이었습니다. 그 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탈출입니다. 벗어나는 것입니다. 무책임하다할지 몰라도 그 당시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족은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무국적자나 마찬가지지요. 외톨이가 겪는 아픔을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일이면 ‘임마누엘교회’, ‘명성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러나 수·금요일 예배와 새벽기도를 다닐 교회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가까운 교회에 다녔지만 저는 선뜻 그럴 수가 없었답니다.  
2003년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를 드릴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마 주님께서 보셨더랬으면 고소해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 너를 장로로 뽑아준 교회를 떠나니 마음이 편해?’하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큰 아이가 ‘높은 뜻 숭의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한번 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는 1,500여명의 등록교인이 있지만 2,800여명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1,300여명이 미등록 교인이지요. 다른 교회에서 상처받은 영혼들이 그렇게 많다는 뜻이겠지요.

창세기 33장 24절에서 32절까지의 말씀,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야곱의 이야기 입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사건입니다. 아마 수십 번은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태어날 때 형의 발목을 잡은 잘못, 형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팥죽으로 장자권을 요구한 탐욕스러운 모습,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여 장자권을 탈취한 죄악 등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야곱입니다’라는 대답 속에 포함하고 있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서야 성경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의 성경기록 어디를 보아도 야곱이 축복받을 이유를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야곱의 축복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해답이 바로 ‘야곱입니다’라는 대답 속에 포함된 회개와 반성의 의미를 말씀으로 듣는 순간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사실
‘높은 뜻 숭의교회’가 별도의 교회당을 건립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유럽을 몇 차례 여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교인들이 사라진 오래된 교회건물이 단순히 관광명소로만 남아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백억 원을 들여 성전건축에 힘을 쏟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형교회가 장차 유럽의 교회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왜 남의 집 마구간에서 태어났는지를 이해한다면 바벨탑의 교회가 무슨 필요가 있을지를 고민하던 차에 ‘교회당 없는 교회’를 선언한 ‘높은 뜻 숭의교회’가 새롭게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신자 교육 시간에 들은 말씀입니다. ‘남편을 잃은 어떤 부인이 어린 아들을 혼자 두고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려 할 때 목사님은 혼자 남은 아들과 함께 즐겁게 밥을 먹고 하루 빨리 기운을 차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제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체계적인 성경교육이 믿음을 더하게 합니다. 기초 지식 없이 기도만을 강요하고, 은사만을 강요하고, 헌신만을 강요하는 믿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교육이 더욱 필요합니다. 제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의견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새벽기도, 수·금요일 예배, 주일예배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우리의 허기를 충족할 수는 없었답니다.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방황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새가족 교육을 마치고, 2004년 4월 ‘높은 뜻 숭의교회’에 등록 성도가 되었습니다. 장로나 권사의 짐을 벗어던지고 이제 성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넓히도록 하겠습니다. 이 교회가 나의 생에 있어서 마지막 교회되기를 원합니다.

나 자신을 죽이도록 하겠습니다. 모난 것을 정으로 쪼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한대로 살겠습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의 모습을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004.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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