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서울야경 만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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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1-21
| 조회수 : 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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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서울시 도시경관지도계장에 있을 때의 일이다.
● 밤의 문화를 변화시킨 통행금지 해제
통행금지를 기억하는가? 족쇄를 채워두면 국민을 통제하기가 용이하다. 물론 남북분단 상황이나 치안에 대한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다분히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해제한 이는 용감한(?) 이가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다. '82년 1월 5일, 많은 사람들이 자정이 넘도록 거리로 몰려다녔다.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말이다. 몇몇 사람들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건·사고가 증가할 것이라는 것과 생활이 문란해 질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통금 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밤이라는 죽은 시간대가 살아 움직이는 시간으로 변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산업구조의 변화이다. 제조업의 2교대 근무가 3교대 근무로 바뀌고,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의 야간개장으로 지방과 서울이 1일 생활권으로 변했다.
반면 유흥업소의 증가나, 범죄의 증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다고 말한다.
● 야간환경에 대한 관심?
야간시간대의 활동시간이 증가함에 따라 국민들은 쾌적하고 안전한 야간 환경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게 된다. 거리를 밝게 하며, 야간경관에 대한 주문이 늘어났다.
우선 공공부문에서 거리를 밝히는 방안으로 가로등의 설치 범위를 넓히고, 가로등의 밝기도 점차 높였다. 88년 서울올림픽을 기화로 20룩스로 높였으며, 1997년부터 2000년까지 전체 가로등의 약 절반정도를 30룩스로 높이려는 목표를 세우고 개량 중에 있다.
'86 '88 국제적인 양대 체육행사를 준비하면서 몇몇 건축물들이 자발적인 경관조명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하였지만 그리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올림픽의 식전·식후 행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은 빛의 마술을 기억하게 되었다. 1994년 대전에서 개최된 엑스포의 각종 전시관에 설치된 조명시설은 빛이 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것인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장관이었다.
● 야간경관의 정책 도입
행정기관에서 야간경관을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한 것은 과천시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과천시에서 '야경연출기본계획'을 수립한 것이 1994년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실제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도부터인데 다소의 문제점이 있음을 실무자는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이 야간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 몇 년이 지나서 서울시를 비롯하여 창원시 등 일부 도시가 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 서울야간경관 기본계획의 수립
서울시가 여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남대문 동대문 등 기존 문화재에 설치한 조명시설 덕분이다. 시민들의 입장에선 보기에 좋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에너지 낭비를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장래엔 야경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본계획은 세워두고자 하였다.
그러나 쉽지가 않았다. 연구비용도 책정되지 않았고, 연구할 인력자원도 풍부하지가 않았다. 야경과 관련된 논문이 한편도 없었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뭔가 만들지 않으면 안되었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밤거리를 수없이 돌아 다녔다. 실망 그대로였다. 어둡고 칙칙하고 암울하고 무질서하고 개성이라곤 전혀 없는 밤 거리를 배회하면서 '그래 한번 바꿔보자'고 다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립대학교 김기호 교수와 조경진 교수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연구비는 대학 자체연구비 800만원으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자세로 연구에 임한 두분 교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이일을 위해 조명설비회사에서 각종 자료를 제공받고, 조명 디자이너들의 도움을 받았다. 가장 큰 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동경예술대학 대학원에서 야경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강화씨의 도움이었다.
● 야경 조명상 신설?
이 일로 인하여 시민들을 비롯하여 서울시의 주요 간부들의 시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야경이 차지하는 비중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형 건축물은 건축심의시 야경조명의 설치를 권장하고, 기존의 백화점이나 호텔 등을 비롯하여, 세종문화회관, 독립문, 서울역, 성수대교, 신행주대교 등 공공분야에서 조명시설의 설치를 시작하였다. 길기석 과장의 저돌적인 추진이 없었다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간다.
1999년 처음 서울 야경상을 신설했다. 18작품이 출품되어 담배인삼공사 사옥이 대상을 차지했다. 2000년 야경상에도 많은 작품이 응모하였다. 아마 몇 년 지나지 않아 서울의 밤거리가 기억에 남을 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지금까지는 양적인 증대가 목표였지만 앞으로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계획하에 야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너도나도 조명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조명시설을 설치함으로 밤의 품위를 높여야 한다. 이와 함께 설치비의 지원이나 운영에 따른 비용을 절감시키는 방안 등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2000년에 서울시야경기본계획의 수립을 위한 용역을 준비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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