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으름에 대한 찬양 A Praise for Lazin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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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손기찬 | 등록일 : 2003-10-27
| 조회수 : 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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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를 깎아 그릇을 만듦은 목공의 허물이다>/「外篇 馬蹄」장자 손 기찬
건축세계에는 별 소득이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개발이 미덕이라는 믿음에 의해 부지런하게도 시간을 허비해 왔다. 우리 모두를 끊임없이 부지런케 함으로서 정신없이 살아와, 우리 건축가의 정체성마저도 상실한 채 였다. 이제 또 건설경기 불황과 함께 건축침체상황에 접하면서,(어쩌면 정상적인 상황일 지도 모르는) 건축학과의 인기하락과 함께 무기력한 사회 전문직 분야로 내팽개쳐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 몸부림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와 밀접한 바깥 세계에서 찾으려는 움직인 것 같다.
정체성의 판단의 기준의 하나는 우리가 처한 현재성에 있다. 지금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이 의미나 중요성을 갖는다면 우리는 이 현상을 깊은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할 일이 없음은 부끄러운 노릇이지만, 할 일이 없으면서도 무기력한 공황상태는 비참하다. 그러나 의사들처럼 총궐기하여 극한상황까지 몰고 갈 자신감도 없고,(그럴리도 절대로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된다)이 비참한 공황상태를 오늘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된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적 사대주의와 문화적 상업주의의 기묘한 결합속에 우리가 진정 선택해 보고자 하는 게으름을 제대로 피워 본적도 없다. 우리의 모든 것을 언제 속속들이 비추어 들여다 본적도 없다. 이 무기력은 지나간 부지럼함조차 치열하게 반성하지 않고 섣부른 희망을 좇는 우리건축계에서 뼈저린 아픔으로 다가온다. 기실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 아닌가?
주거환경은 외면된 채, 그저 꽉 채운, 잘 뽑은 다가구와 다세대주택들과 전국토의 고층 아파트화에 지대한 공은 누구의 몫일까? 그 많은 까페와 러브호텔과 예식장이 유럽의 고성, 아라비아의 모스크로 둔갑해도 그것 또한 건축사들의 업무 영역이었을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았으니 나하고 관계없는 천박한 업자가 했을까? 아니면 인테리어업자, 시공업자 그렇다면 많은 허가건축물들은 물샐틈없는 건축사라는 제도장치를 빠져나갔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 알량한 건축사도장만 찍었을까? 일년에 수십건씩 처리하고도 그 대가로 우리는 바삐 살아왔다. 아니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갈 수 있었다. 천박한 개발업자에게“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게으름은! 건축허가업무가 건축사의 업무전부인 대부분의 오늘의 현실은 우리를 건축가의 사회적 직능에서 더욱 경원시되고 있다.
차라리 건축허가라는, 설계라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건축서사라든가, 빌더라든가)게으름으로 사회적 스테이터스를 찾는 길은!
그 잘난 작품들은 잡지를 쉽게 베끼고, 그도 모자라 가서 보고 베낀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들의 문화나 환경에 관한 관심은 없고 오로지 외피만 그것도 일부만 적당히 베낀다. 무슨 대형 프로젝트하면 으레히 자료수집차 바삐 해외유람을 다녀오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공공기관에서는 아예 외국건축가와 협력참여 해야한다는 전제이니, 그래서 바쁘게 외국건축가들의 치다꺼리에 여념이 없다. 건축설계를 통해 우리의 환경에 깊숙이 개입된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고 여전히 살아 남으려는 수세적인 자세로, 좀 여유가 생기면 약육강식의 자세로 여전히 밀고 나간다. 그렇게하여 부지런하게도 한꺼번에 엄청난 설계자로 이름을 남긴다. 유능하고 책임감있는 강한 경영자도 대형설계사무소에서 꼭 필요하다. 그러려면 설계자에게 이름을 넘기는 게으름도 필요하다.
건축사 면허증 한장에 달랑 사무실을 차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부지런함에서 벗어나 평생을 안주할 수 있는 유능한 젊은 건축가들의 게으름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안주하지 않고 나서는 아뜨리에사무실들은 작품이 아니라, 개념이 아니라 재료, 기술, 시공면에서 처절한 몸싸움에 의한 우리 건축을 만들 수 있는 게으름이여!
설계란 중개업무와 달리, 비록 설계계약이 되더라도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모돼야 하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계전에 이미 부지런떨게 만들어 우리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무수한 계획안들이여! 의사와 변호사들처럼 그 대가를 고스란히 지불 받는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속절없이 바쁘지 않고 얼마나 게을러질 수 있을까? 설령 성사된다 한들 설계비는 우리를 게으르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건축주는 건축가를 누구로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얼마에 해 줄 것인가? 라고 묻는데 건축주가 패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결과야 어찌되었건! 우리의 부질없이 부지런함은 결국 그물에 걸린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일이란 무엇인가?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 종류의 일은 즐겁지 못하고 보수도 박하다. 두번째 일은 즐겁고 보수도 높다. 우리 사회에서 개인은 이윤을 위해 일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오히려 생산하는 것을 소비하는데 있다. 신경쇠약과 피로와 소화불량증 대신에 말이다. 필요한 일만 함으로써 기력을 소모하는 일없이 여가를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일만 한다면, 당연히 일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축설계작업은 법적으로 예외 없이 건축사사무소가 아니면 불가능하니, 어느 건축사사무소에서던 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으른 꿈을 꾼다면 기준요율 없이도 댓가는 올라갈 것이다.(일정한 능력이상만 갖춘 모임이라면, 어쩌면 이익단체의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부지런한 수주전쟁에 내몰려야 하는 젊은 건축학도들은 무모한 계획안에, 현상설계에 지금도 밤을 지세우고 있다.
현대의 생산방식은 우리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쪽 사람들에겐 과로를, 다른 편 사람들에겐 굶주림을 주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월드컵경기장 설계기간보다도 더 긴 주택설계기간의 게으름이여!
일전에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에 관한 업무를 대행하는 건축사가 그 결과를 허위로 보고한 경우 종전에는 2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였으나, 당해 건축사가 실질적으로는 공무원으로서의 직무를 행한다는 점을 감안하여 2년 이하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을 강화하였다. 애초 문제는 조사검사업무는 허가권자의 고유한 의무이자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부나비마냥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부지런함이다. 서울시의 경우, 특별검사원의 신청자격기준이 행정처분을 받지않은 게으른 건축사인데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많은 신청자가 몰렸다고 하니 그저 의아스럽고 경탄스러울 따름이다. 운 나쁘게 행정처분 받지 않으려면 우리는 땅속을 파 봐야 하고 정화조 속으로 몸을 던져서 뒤적여 봐야 할 것이다. 주어진 설계나 열심히 하고, 감리에 성실한 게으름에 만족한다면 이러한 제도도(감리와 검사도 구분 못하는), 이 천금같은 무거운 짐을 떠메지 않아도 될 터인데!
설계가 문화 예술입네 하지만 금액을 정해놓고 뺑뺑이 돌리기를 해도, 최저가 낙찰방식에 의해 일원에 감리비가 낙찰되어도, 엉터리 같은 방식이라고 우리는 비웃지만 발주자들은 별로 겁내는 것 같지 않다. 누군가는 벌떼같이 달겨들 것은 뻔한 노릇이니까! 현재의 법대로라면 건축사가 아니면 절대로 설계할 수 없는 제도일 진데도! 의사나 약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천년의 문 설계경기에서 아이디어를 받아보겠다는 발상이건만(C.G작업도 마다하면서) 그 바쁜 기라성같은 사무소들이 어마어마한 계획안을, 작업파넬들을 내놓는다. 작품집제작사에서는, 게을리 수작업한 파넬은(C.G작업하지 않아) 제작하기 힘들다고 오히려 역정이다. 거대한 당선작은 광활한 들판이 아닌, 우리의 도시환경에 순응하는 게으름이여!
모범답안같은 지침서에 의해 응모된 구민회관들은 지역성은 무시된 채, 디자인감각을 뽐내는 하나같이 출중한 작품들이다. 어느 것이 당선되도(지역과 주민들이 이용하지 않는다면) 어느 구에 지어져도 손색이 없다. 심사위원들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골라잡기 힘든 작품을 용케도 집어낸다.
건축문화대상 문제점을 토론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토론자의 면면은 바쁘게 참여한 시상자, 심사위원, 시공회사 등 바쁘고 바쁜 시간을 쪼개 각론은 없고 총론적인 목소리만 높인다. 건축문화대상에 참여하지 말자고 연일 다급하게 팩스를 보내 온다. 방송국 현상설계에서 발주처가 문제가 많으니 참여하지 말자고 부지런하게도 등기속달로 부쳐온다. 건축문화대상에 참가자가 적어, 현상설계경기 참가자가 없어, 아니면 적어서 무산된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고, 심사위원들이 모두 불참해서 심사를 치르지 못했다는 게으른 소문은 아직 듣지 못했다
우리시대의 음모는 우리를 부지런하게 하는 것이다. 인터넷시대에 우리는 컴퓨터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미련스럽게 일하고 있다. 이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은 것 같다. 그러나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대한 건축가도 개혁가도 아니다. 제대로 이기적이고 자기관리능력을 가져야한다. 부지런함에서 벗어나 혼자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하고 자신의 피해의식과 상대적 박탈감에서 벗어난 자신이 시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개인의 능력이나 자신이 없다면, 무모한 부지럼함에서 비껴서야 할 것이다. 아! 게으름이여 2001년건축사수첩 제일 첫페이지에 나오는 건축사헌장을 한번쯤이라도 되뇌이는 읊조리는 위대한 게으름이여! 이와 같은 게으름은 경제불황이 아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일시적인 생활방편이 아니다. 그것은 두고 두고 배우며 익혀가야 할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우리의 생활신조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 싹을 키워서 미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만일 그 선택을 우리가 거부한다면 미래는 우리를 버리고 말 것이다.
<진정한 자유란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오직 진정존재, 그 실체에 의해서만 제한받는 것이다.>「자유로 부터의 도피」에릭 프롬
*孫基贊씨는 한마디로 새색시 같은 분이시다. 얼마나 얌전하고 겸손하신지 대할 때 마다 내가 어려울 정도이시다. 그는 건축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계시며, 인하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편찬위원회 위원으로 계시며, 200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위원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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