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飛行看山 旅行記-마드리드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3-12-15 | 조회수 : 346


4. 예술의 향기를 간직한 마드리드
당초 마드리드는 그리 큰 도시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슬람이 지배할 당시에는 똘레도를 수비하기 위한 요새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인구는 1,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1083년 알폰소 6세에 의해 마드리드를 탈환했고, 그 후 1561년 펠리페2세에 의해 처음 수도로 정했다.
스페인 제국의 전성기에 수도로 정한 이래 400여 년간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역사를 간직한 건축물 사이사이에 현대적인 건축물이 상당수 있었고, 앞으로 그 속도는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36년에서 1939년에 있었던 스페인 내전시 많은 건축물이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새로운 건축물을 건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도 변화가 멈추지는 않은 것 같다. 도심의 중요거리에 위치한 기존건축물은 외관을 잘 보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변화를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 바르셀로나보다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았다.

우리는 시간제약상 마드리드를 충분히 둘러 볼 수없었다. 똘레도를 하루 관광하고 남은 시간에 마드리드를 둘러보는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

4.1. 왕궁(Placio Real)
스페인은 아직도 국왕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러나 재산이 없고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는 왕이다. 검소한 국왕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한다. 프랑코가 왕을 인정하는 대신 왕가의 재산을 국유화하고, 월급을 받기로 협상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월급 받는 유일한 국왕이다. 왕은 사저에서 지내고 중 요행사는 지금도 왕궁에서 행하는데, 그 때만은 왕궁을 일반인에 게 개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펠리페 5세는 자신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어 1738년 이탈리아의 건축가인 필립뽀 쥬바라(Filippo Juvarra)에게 왕궁 건축을 지시하였으나 공사중 그가 죽자 지오반니 바띠스 사께띠(Giovanni Battista Sacchetti)가 계속 하여 1764년에 완성하였다. 왕궁안에는 각종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4.2. 광장의 도시
스페인은 광장의 도시다.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곳은 의례히 광장이 있다. 스페인 광장, 가스띠야 광장, 독립 광장, 아또차 광장, 의회 광장, 시벨레스 광장, 태양의 문 광장, 비야 광장, 동쪽 광장, 서쪽 광장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광장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로마에도 스페인광장이 있을 정도로 스페인이 광장의 원조인지도 모른다.

광장은 모임의 공간이다. 모임은 토론으로 이어지고, 토론은 민주화의 첩경이다.
비야 광장은 마드리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다. 1640년대 건축된 시청 건물이 있고, 16세기 전반에 건축된 씨스네로스 추기경의 집이 있다.

마요르 광장은 1620년 이시드로 성인의 축제와 함께 개설했다. 광장 주변에는 왕실과 주변 점포등으 로 둘러 쌓여 있다. 광장 중앙에는 마요르 광장의 이름을 부여한 펠리페 3세의 동상이 서 있다.



스페인 광장은 마드리드의 가장 중요한 광장이다. 높이 117m의 스페인 빌딩(1940년대 Otamendi 형제에 의해 건축되었음), 32층의 아파트와 사무실이 복합된 마드리드 빌딩(1952년대 Otamendi 형제에 의해 건축되었음)이 있고, 광장 중앙에는 돈키호테와 산쵸 빤샤의 동상이 있으며, 스페인이 자랑하는 대문호 동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의 동상도 있다.

4.3. 스페인의 투우
스페인에서 투우와 플라맹고를 빼 놓으면 연상되는 것이 없다. 투우는 목축업이 성행한 16세기 이후 제사의 일종으로 도입된 것이라고 한다. 포루투칼의 투우는 소가 죽지 않지만 스페인의 투우는 반드시 소가 죽어나간다는 점이 다르다. 보통 일요일에만 투우장을 개장하는데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특별한 날이면 토요일에 개장 하는데, 마침 우리가 마드리드를 방문한 토요일에도 투우를 한다고 해서 관람하려고 했으나 몇 사람이 피곤하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 보지 못했다. 몹시 아쉬웠다.

4.4. 피카소와 게르니카
나는 피카소의 팬이다.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몇 번의 피카소 전시회에 빠짐없이 관람했을 정도이다. 마드리드를 방문하면서 그의 대작 게르니카를 한번 보기를 원했지만 단체 관광 일정상 볼 수가 없었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 남쪽 안달루시아 말라가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파리 등을 전전하면서 미술수업을 통해서 실력을 쌓게 되고, 그만의 양식인 형태분해주의적인 모습을 이루게 된다.

1936년~1939년 사이의 스페인 내전을 겪으면서 피카소는 그의 대작 ‘게르니카’(3.49m×7.77m)를 그리게 된다. 스페인 북부지역의작은 마을인 게르니카에 독일공군의 비인도적인 폭격을 비난하고, 조국 스페인의 암울한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을 파리 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를 돌면서 순회전시를 가졌다. 피카소는 1939년 이 그림을 뉴욕 근대미술관에 장기임대형식으로 빌려 주었다. 스페인이 민주화되면 그때 스페인으로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피카소가 죽고 독재통치가 끝난 이후 1981년에야 스페인으로 반환될 수 있었고, 1992년 소피아왕비 미술센타(Centro de Arte Moderno Reina Sofia)로 옮겨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피카소는 ‘프랑코의 꿈과 虛言’,‘통곡하는 여인’,‘게르니카’들을 통해 프랑코의 미움을 샀다. 그는 프랑코의 반대로 결국 조국의 땅을 밟지 못한 채 1973년 프랑스 무징에서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피카소의 작품은 무궁무진하다. 한 사람의 작가가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장수했을 뿐 아니라 생전에 그만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작품 활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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