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飛行看山 旅行記-카이로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3-12-16 | 조회수 : 353


6. 위대한 왕조의 가난한 도시-카이로
이스탄불을 떠난 비행기가 깊은 밤(23:00)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입국이 까다로울지 몰랐다. 입국신고와 세관신고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관광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공항을 출발할 수 있다는 말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카이로의 관광수입이 년 4억불이라는데 관광객을 이렇게 불편하게 대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1982년 무바라크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지금까지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란다. 사회주의국가답게 어디를 가도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만 눈에 띈다. 공항, 관광지는 물론이고 모든 호텔의 정문에도 관광경찰이 지키고 있을 정도이다. 덕분에 치한이나 소매치기는 적은 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주눅 들어 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유유작작한 모습, 오랜 계엄상태에 익숙한 탓인지 아님은 인샬라 덕분인지 몰라도 경찰들만 아니라면 살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군부독재시절에 외국인이 바라다본 느낌이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 거렸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출발하는 시간이 밤 12시를 넘었는데도 교통체증으로 호텔로 가기까지 쉽지가 않았다. 도로변에 공사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였다. 낮엔 날씨가 덥고, 또 하루 5번의 기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작 놀거나 필요한 일은 서늘한 밤을 이용해서 한다고 한다. 나일강 크루즈를 위해 강변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였는데 그 때에도 강변에서 결혼식 피로연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우리가 승선한 유람선 2층을 빌려 밤 12시가 넘도록 즐기는 그들이었다. 보통 새벽 2~3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카이로에선 과일이 풍부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과일의 종류가 무려 10가지가 넘었다. 그리고 모두 달고 맛이 있었다. 물론 그중에 떫은 감에 단맛을 더한 이집트 대추도 먹음직했다. 무화과도 그랬다. 성경에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마 고향이 이 근방인가 보다.

우리가 카이로 공항을 떠날 때 성남의 신발공장에 근무한다는 카이로 근로자를 만났는데, 우리를 보고 아는 체를 했다. 떠듬떠듬 우리나라 말로 2달 동안 자기나라에서 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돈을 벌어서 잘 살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는 그에게는 ‘인샬라’가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6.1.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피라미드가 이집트 왕들의 무덤이라면 스핑크스는 다시 태어나는 생명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스핑크스가 피라미드의 수호신이라고 하나 피라미드보다 훨씬 전에 건립된 것으로 수호신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사자의 형상을 갖추고 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3개의 거대한 피라미드, 압권이었다. 그 순간 도무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처럼 거대한 구조물을 세울 수 있었을까? 이러한 권력의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곳에는 작은 피라미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왕비들의 무덤이란다. 모두 98개의 피라미드가 있다고 한다.



파라오는 등극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사후세계를 위한 무덤을 축조한다고 한다. 쿠프왕의 피라미드를 축조하는데 10만 명 이상의 노예가 동원되었다고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그렇게 말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믿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650만 톤에 이르는 250만개의 돌덩이를 축조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을 계산하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초기단계에 1만5천명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상식의 오류사전Ⅲ 278p(발터 크레머외 2인/경당/2002.11)
그래도 당시 이를 축조하기 위한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그 결과 국가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을 것은 명확하다.

피라미드의 지금처럼 계단식이 아니라 면이 평평했다. 화강석으로 계단식으로 쌓고, 그 외부에 석회를 발라 면이 평평하도록 했다. 그러나 무슬림이 지배하던 시절에 그 외부 석회석을 가지고 이슬람 사원을 축조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쿠프 왕과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는 외부가 전부 뜯겨졌고,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는 윗부분에는 원래의 모습이 남아있다.

가이드 말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라고 소개하고 있긴 한데, 사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멕시코에 있다고 있다. 이 피라미드는 2~6세기 사이에 아스텍의 신 케찰코아틀(Quetzalcoatl)을 모시기 위해 세운 것이다. 바닥넓이가 18ha, 높이54m, 부피 330만㎥여서 쿠프왕 피라미드보다 100만㎥정도가 더 크다. 상식의 오류사전Ⅰ 315p(발터 크레머외 2인/경당/2002.11)
쿠프 왕의 손자인 멘카우레 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작은 이유는 그 축조 과정에 죽었기 때문이란다.



어떤 사람은 피라미드가 단순한 무덤이기 이전에 해시계, 달력, 천문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원래 높이를 기준으로 동지에는 그 그림자가 80m를 만들고, 봄에는 0m로 줄어든다고 한다. 이 그림자를 이용해서 하루의 시간, 계절을 식별하는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문제는 카이로에는 이러한 화강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 아스완에서 채취하는데, 매년 한차례 범람하는 나일강의 물길을 이용해서 배로 운반한다고 하니 상상이 안된다. 나일강이 범람하면 지금의 스핑크스 앞부분까지 배를 댈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피라밋에 사용된 돌만 1,260만 톤이 되니 당시 배로 10톤씩 옮겼다고 하더라도 모두 130만 척의 배가 필요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스핑크스나 다른 작은 무덤까지 합한다면 상상을 불허한다. 인간의 힘과 그 한계를 가름할 수가 없다.



6.2. 나일강의 범람과 파라오의 통치
나일강은 이집트의 젓줄이다. 이곳은 그들의 삶의 원천이다. 수천 년을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이 없었더라면 이집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일강의 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나일강의 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파라오는 나일강의 범람을 비는 제사를 드렸다. 피라밋을 만들고 궁전과 신전을 만드는데 필요한 석재를 운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흉년이 들면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물이 범람하면서 상류층(우간다에서 발원해서 10개국을 거쳐 이집트까지 흘러온다)에 있는 비옥한 토양이 나일 강변에 퇴적시켜 풍성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토면적의 95%가 사막이니 만약 나일강변을 따라 3모작이 가능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백성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을 것이리라.

지금은 아스완 댐을 만들었기 때문에 범람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나일강변에 풍성했던 파피루스가 사라졌다고 한다. 아스완 댐의 수력발전으로 생긴 전기가 풍부해서 대낮에도 가로등의 불을 끄지 않을 정도이다.

6.3. 카이로 회담의 장소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영국?중국의 수뇌부가 모여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한 무조건 항복 요구, 한국의 독립선언을 포함한 내용을 선언한 ‘카이로 회담’이 개최된 장소가 피라밋이 있는 매너하우스 호텔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그 호텔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6.4. 어린 예수님의 피난처 - 곱틱교회
카이로에 왠 교회? 알고 보면 이집트와 기독교는 결코 무관한 나라가 아니다. 이집트 파라오의 신전 축조에 동원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넌 모세의 이야기, 그 과정에 말을 듣지 않는 파라오에게 내린 10가지 재앙, 모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시내산 등 구약성경의 중요배경이 된 곳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15절을 보면 예수의 태어남을 알게 된 헤롯의 박해를 피해 간 곳이 애굽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나일강변에 위치한 이 곱틱교회라는 것이다.
이집트에선 이슬람이 아니면 사람행세를 할 수 없다. 신분증에 종교란을 기재하는 곳이 있는데 무슬림이라고 기재하지 않으면 공직은 거의 맡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한 카이로 대학 출신의 현지 가이드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그는 결코 기독교를 버릴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믿음에 존경심이 앞섰다.

이 곱틱교회는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육신으로 태어남을 인정하지 않음)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선 이단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이집트에선 인구의 10%가 곱틱교인이라고 할 정도이니 적지 않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2000년에 처음 성탄절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증개축을 금한 곱틱교회의 건축규제를 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탄절과 부활절이 되면 국영 TV를 통해 특집방송을 할 만큼 기독교인에 대한 대우가 달라졌다고 한다.



요한복음 12장 12절에서 15절까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을 기술하고 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예루살렘 시민들은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치며 맞이하던 장면이 나오는데 룩소로 가는 동안 수많은 종려나무를 볼 수 있었고 나귀들로 볼 수 있었다. 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잘 것 없는 나약한 짐승, 순종하는 짐승을 택한 그 이유를 말이다.

6.5. 열악한 주거환경, 시내의 공동묘지에 거주하는 30만 명의 빈민들
카이로 시내엔 고층아파트가 적지 않다. 대개 5층이거나 그보다 높은 초고층 아파트도 심심찮게 보인다. 그런데 외벽은 조잡하게 쌓은 벽돌모습 그대로이다. 그런데 빈집이하도 많아서 가이드에게 물었더니 약 30%만 입주하고 나머지는 빈집이란다. 경제적인 이유로 입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지경이란다. 빈집은 봄철에 사우디관광객에게 빌려주는 것이 오히려 빈집으로 갖고 있는 것보다 좋다고 했다. 임대를 주어도 임대료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비워두는 것이 오히려 이익이라는 것이다. 공급은 넘치는데 수요가 없는 카이로의 주택의 사정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강남의 아파트 사정을 비교해 본다.

보통 우리나라 돈으로 6천만~8천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월세는 보통 200$ 정도란다. 그런데 방음이 전혀 안되어서 위 아래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구입한다고 했다.

1층~2층 정도의 주택도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붉은 벽돌로 외벽을 치장했는데 그야말로 형편없다. 비가 없는 지방이기 때문에 지붕이 없는 집도 있고, 대부분 건축하다만 상태 같았는데, 1층을 지어서 살다가 아들이 분가하면 2층으로 건축하고, 세를 줄 일이 생기면 한 층을 더 증축하기 위해 철근을 삐죽이 빼 둔다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그런 집에도 위성안테나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더 하나 슬픈 일은 도심에 있는 공동묘지에 3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카이로 시정부도 도심에 있는 공동묘지 단지가 고민꺼리다. 도로변에 담장을 쳐서 관광객이 보이지 않도록 했지만 완벽하게 가리지 못해 군데군데 보인다.
재개발을 하고 싶어도 모스크를 옮기지 못해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한다. 모스크가 가장 먼저 들어서고 다음에 마을이 형성된다고 한다. 모스크가 종교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한번 건립된 모스크는 옮기거나 없앨 수 없는 불문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재개발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이집트는 매장을 하지 않는다. 세마포로 싸서 담장으로 둘러친 지붕이 없는 곳에 그냥 둔다. 미이라가 발달한 이집트의 장례풍습을 이해할 것 같다. 자연상태에서 썩을 때까지 그대로 둔다. 돈이 있는 사람도 장례식에서 코란을 읽는 사람을 고용하는게 고작이란다. 그런 무덤이 시내 중심지에 곳곳에 있다. 삶과 죽음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그들의 풍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짐은 어찌된 일일까.

이곳에 지붕을 치고 사는 30만명의 빈민들은 장례를 도우면 생계를 유지하는데 1$이면 이틀의 식량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카이로 시정부로선 골치 덩어리일 수밖에, 시내에서 택시를 잘못타면 이곳 공동묘지로 끌려와서 지갑을 털리고 봉변을 당하기 때문에 외국인은 혼자 함부로 택시를 타지 말라고 한다.



6.6. 교통신호가 없는 나라
만약 세종로 네거리에 교통신호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런데 카이로 시내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고가 거의 없다. 차량이 주행하는 앞으로 사람과 자전거가 태연하게 건너도 사고가 없다는 것이다. 사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시내를 관통하는 동안 신호등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좀 복잡한 곳에선 교통순경이 수신호를 하지만 그것도 한군데 밖에 보지 못했을 정도이다.
달리는 차량끼리는 서로 손짓을 통해서 의사를 교환하고 있었다. 밤인데도 라이트를 켜지 않고 시내를 질주하는 차량이 적지 않았다. 시내를 질주하는 차량 중엔 우리나라 차량을 많이 발견 할 수 있어서 흐뭇했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인샬라’이고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어도 ‘인샬라’란다. 그렇기 때문에 교통신호등이 없어도 교통순경이 없어도 별 사고 없이 잘 운영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6.7.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는 나라
이슬람은 율법으로 4명의 부인을 둘 수 있다. 바람기 많은 한국 사람들에겐 솔깃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두 번째 아내를 마지하기 위해서는 첫째 아내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으나 지금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참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담 때문에 결혼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혼수문제 때문에 이혼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사촌과의 결혼도 가능하고, 대부분 결혼하기 전에 가족들의 허락 하에 1년 정도 교제를 가진 후에 약혼식을 하고 난 후 결혼을 한다고 한다. 교제기간에 손을 잡거나 키스를 하는 것은 금물이란다. 처녀의 오빠가 데이트 시간 내내 멀리서 감시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이는 몰래 할 것은 다 한다고 한다.
나일강 크루즈에 승선한 일단의 청춘 남녀들의 미팅장면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개방된 징조가 아니겠는가. 선상 어둔운 곳에서 젊은 남녀들의 은밀한 신체접촉 장면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집트 남자들은 남모르는 여자들을 희롱할 수 없다. 만약 희롱하다간 여자한데 두들겨 맞거나 경찰에 걸리게 되면 곤욕을 치른다. 여권이 센 나라다. 그러나 결혼을 하게 되면 남자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단다. 그러나 외국여자들에겐 추파를 던지는 일을 예사로 한다고 한다. 이곳에도 비공식적인 창녀가 있다고 한다. 부자 동네 앞에서 호객을 하면 마음에 들면 차를 타고 가면서 가격을 흥정하게 되고, 빈집이 많기 때문에 그 공간을 이용해서 매춘을 한다고 한다. 택시를 탈 때 여자가 운전석 옆자리에 앉으면 직업여성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6.8. 다섯 차례의 예배
이슬람은 꾸란에서 정한대로 하루 5번의 예배를 보아야 한다. 해돋이 예배(파즈르 Fazr), 이른 오후 예배(주흐르 Zuhr), 늦은 오후 예배(아스르 Asr), 일몰 예배(마그리브 Maghrib), 밤 예배(이샤 Isha)가 있다.
어디에 있던 그들은 예배시간이 되면 메카를 향해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예배를 통해서 자신을 보다 신에 가까이 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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