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飛行看山 旅行記-룩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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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3-12-16
| 조회수 :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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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겁의 도시-룩소르 카이로 숙소에서 아침 4시에 깨어 대충 과일로 아침을 때우고 6시 40분에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카이로 공항보다 더 엄격하게 검색을 당했다. 허리끈과 안경까지 벗어야 검색대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민감한 검색대를, 그것도 2개의 검색대를 통과하면서 솔직히 짜증스러웠다. 국내선에까지 이처럼 까다롭게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시간의 비행을 하여 룩소를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또 한번의 헤프닝을 겪게 되었다. 공항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 입구에서 흑인이 지키고 서서 1$을 달라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우리는 1$을 주고 일행 5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흥정을 했다.
룩소르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시내에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마차가 있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미리 준비된 버스를 타고 왕들의 계곡으로 향했다. 가는 길, 나일강변의 푸른 곡창지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드문드문 농부들도 보이고, 짐을 진 나귀를 끌고 가는 소년의 모습도 우리의눈요기 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아마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탓던 그 나귀의 후손은 아닐까.
95%가 사막이고 5%만이 사람이 거주한다. 나일강변의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백성들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옛날의 파라오가 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3모작이 가능한 곡창지대 덕분이었다고 한다. 매년 나일강이 범람하는 홍수를 통해 나 일 삼각주까지 비옥한 토양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곡창지대가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스완 댐을 만듦으로 홍수와 범람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일강에 의해 동서로 구분되는 룩소르는 태양이 뜨는 동쪽에는 신전을, 태양이 지는 서쪽에는 묘지나 장제전을 건축했다. 왕들의 계곡, 즉 서쪽 계곡을 죽음의 계곡이라 부른다. 여기에 묻힌 파라오는 피라미드 왕조의 다음 세대의 왕조, 즉 3000년 전의 왕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7.1.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 왕들의 계곡을 가는 중간에 멤논 거상이 나일강을 향해 서 있었다. 그 뒤로 신전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초석만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는 아메노피스 3세가 BC 1411~1375년에 세운 것인데, 높이가 18m나 되는 거대한 스핑크스인데 지금은 그 얼굴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에 의해 살해된 멤논의 상으로 알고 있어서 모두들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날씨가 생각보다 더웠다. 9월인데도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너무 더워서 모자를 하나 샀다. 3개에 10$을 주었는데, 그것도 가이드의 흥정 덕분에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들도 가이드의 얼굴을 잘 알고 있어서 결코 매정하게 굴지는 못하는 것 같다.
7.2. 죽음의 땅-왕들의 계곡 풀 한 포기 없는 돌덩어리 산, 더운 열기가 우리를 질리게 했다. 매표소에서부터 이동 차량을 통해서 올라가지 않았다면 무덤 앞에서 지쳐 쓰러질지도 모른다.
도굴을 염려하여 암벽 중간에 구멍을 파서 무덤을 만든 왕들의 계곡에는 모두 64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더 있는지 모른다. 이 무덤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들의 후손인 도굴꾼이었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도굴꾼의 마을이 왕들의 계곡 입구 매표소 좌우에 초라한 모습으로 들어서 있다.
이 골짜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미국인 골동품 수집가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가 구입한 파피루스가 피라미드 왕조 이후의 것임을 알게 되었고, 이집트 박물관 측에 사실을 알렸다.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 도굴꾼의 마을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설득해서 중세 왕조의 무덤을 찾아내어 1881년 이를 발표하게 된다. 박물관 관계자들이 무덤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이미 무덤 안은 텅 비어 있었다고 한다. 그곳을 먼저 발견한 도굴꾼들이 부장품을 모두 다른 곳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계곡에는 투탕카멘, 투트메스 3세, 세티, 람세스 3세 , 람세스 6세, 람세스 9세의 무덤들이 대표적인 무덤이다. 그중 일부는 관광객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 미공개 되는 무덤이 더 많다. 우리는 그 무덤 안을 기어서 들어갔다. 엄청 더웠다. 마치 한증막에 들어 간 느낌이었다. 사진기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아서 촬영을 하지 못했지만 무덤 내부에 새겨진 각종 벽화의 선명함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어떻게 3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선명한 채색화가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무덤까지 들어가는 길은 좁고 길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릴 땐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였다. 이곳을 다녀간 우리나라의 어떤 할머니 왈 ‘어떤 미친놈이 여기까지 와서 죽어서 우리를 이렇게 고생을 시키는가?’라고 푸념을 했다나? 뭐라나?
투탕카멘의 무덤은 도굴꾼이 미처 손을 대지 못했다. 때문에 수많은 부장품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집트 박물관은 마치 투탕카멘의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부장품들을 전시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아쉽게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였다.
투탕카멘은 18세의 나이에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진 화려한 부장품을 보면, 다른 왕들의 부장품은 얼마나 더 많았을지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은 사라져 대부분 부호들의 개인 소장품으로 숨어있겠지만 언젠가는 일반인들에게 공개될 것이라 본다. 물론 그 기간이 몇 십 년 몇 백 년이 지나야 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7.3. 하트셉수트 장제전(Deir el Bahari) 투트 메스 2세가 죽자 그의 아내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그의 어린 아들 투트 메스 3세를 왕위에 올리고 섭정을 하다가 나중에 스스로 파라오에 등극한 여인이다. 그녀는 파라오에 등극하면서 그의 시아버지 투트 메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목적으로 장제전(장례를 지내는 곳)을 건립했다. 장제전의 벽에는 현재의 소말리아와 통상무역에 주력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장제전중에서는 가장 거대한 제전이다. 이곳은 15~16세기에는 그리스도 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제전 입구의 좌우에는 수많은 부자들의 무덤이 있는데, 왕들의 무덤에 비해 초라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규모다. 일반인들은 매장을 하지 않고, 마포에 싸서 지상에 그대로 두기도 한다고 한다. 카이로 시내에는 이러한 무덤도시가 여러 곳에 있었다.
7.4. 룩소르 신전 룩소르 신전은 아몬 신전에 살고 있는 아몬 신이 오페트 축제에 들러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란다. 이 신전은 아멘호테프 3세 때 시작해서 투탕카멘, 람세스2세,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그 규모가 더해져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스핑크스 대로를 지나면 정문이 나오고 람세스 2세 광장과 신전 내부가 나온다. 그 규모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7.5. 카르낙 신전 중왕국 시대에 착공해서 신왕국까지 1500년 이상 걸려서 축조된 카르낙 신전은 파라오 시대의 압도적인 건축물이다. 태양신 아몬신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Mut 신전, Montu 신전, Khonsu 신전 등 룩소르의 수호신들을 모신 신전을 배치하고, 아몬호텝 2세 및 3세, 람세스 3세 등 파라오의 신전도 배치되어 있다.
암몬 신전 탑문 앞에는 양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을 가진 스핑크스가 도열하고 있으며, 제1탑문을 지나면 8,650㎡에 달하는 대광장이 나온다. 이 대광장의 북쪽에는 아몬신 무트신등의 성스러운 배를 모셔두었던 세티 2세의 신전이 있고, 대광장 남쪽에는 람세스 3세의 신전이 있다.
대광장을 지나면 제2탑문이 나오고 그 탑문 앞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람세스 2세의 석상이 있다. 제2탑문을 지나면 5,356㎡에 134개의 엄청난 굵기의 기둥이 나온다. 그 기둥에는 조각과 그림을 그려 두었는데3천년이 지난 지금도 색상을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제3탑문과 제4탑문 사이에는 작은 광장이 나오고 그 광장 동쪽에는 높이 23m, 143톤의 오빌리스크가 나온다. 제4탑문 안쪽에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빌리스크가 27.5m, 320톤의 규모로 우뚝하게 서 있다. 제5탑문과 제6탑문을 지나면 태양신 아몬 의 지성소가 나온다. 지성소 남쪽에는 제사장들이 종교의식을 행하기 전 목욕을 하던 성스러운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입구에는 신성한 동물로 여겼던 딱정벌레의 석상이 있다.
람세스 2세는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아 들였다. 아래 석상이 람세스 2세와 그의 딸의 모습이다. 이 신전의 총 규모는 남북으로 2km, 동서로 500m~600m나 되어 그 규모면에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이곳 밤에는 소리와 빛의 축제를 개최하는데 1시간 30분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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