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깔 있는 아파트 만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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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1-21
| 조회수 : 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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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종합건설본부 감독관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 회색도시에서 미색 도시로
박대통령은 계란색(미색)을 몹시 좋아했다고 한다. 일설에는 육여사가 좋아했었던 색이라나 뭐라나. 하여간 높으신 분이 좋아하는 색상을 칠하지 않는 것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할 시절이었으니, 유아원에도, 관공서 청사에도, 거리의 담장에도, 민간 아파트에도, 계란색이 넘쳐났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색시대였다. 어쨌든지 계란색시대로 바뀌어 도시가 밝아진 것은 분명했다. 당분간 미색시대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회색이나 미색은 변화를 거부하여 무미건조하게 한다는 점이다.
● 미색에서 컬러시대로?
단일 색상에서 컬러풀한 색상으로의 변화는 '80년대 민주화 물결과 함께 밀려오기 시작했다. 우선 아파트가 그 일에 앞장섰다. '80년대 초에는 현대건설이 아파트를 건설하면서 새로운 색상을 만들어냈다. 밤색에 적당한 흰색과 검은색을 혼합한 색깔, 한 때 정회장이 좋아했던 색상이라나 뭐라나? 현대아파트 하면 그 색상이 연상될 정도다. 그 이후 몇몇 다른 건설사에서도 특유한 자사의 색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도 단일 색상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했었다.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된 것은 그 후 몇 년이 지난 일이었다. . 라미환경연구원의 김 경영 원장이 디자인한 목동 아파트 단지와 농수산물 시장의 그래픽이 대표적인 것이다. '85년에서 '86년도의 일이다.
민간 아파트로는 강남터미널 옆의 삼호 아파트가 최초가 아닌가한다.
● 컬러풀한 시민아파트 만들기
필자는 '85년 10개월간 서울시 종합건설본부에 근무했다. 시공에 문외한이었지만 성산 시민 아파트 건설현장의 책임감독을 맡았다. 그 당시 종합건설본부에서 공사중인 아파트는 성산 말고도 월계동에도 건립하고 있었다.
필자를 포함한 몇 명의 감독관이 시민 아파트의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데 공감을 했다. 첫 번째 아이디어가 그래픽 디자인을 도입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계약서에는 그래픽디자인을 요구하기에는 조건이 분명하지가 않았다. 시공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반대했다. 공사비가 배가 더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공무원이 그렇게 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갑』과 『을』의 차이라고 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시공자는 우리의 의견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밉게 보였다간 다른 곳에서 더 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이다.
이 일을 놓고 모든 공무원이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괜한 일을 벌린다고 눈총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색상을 잘못 선택했다간 윗사람의 눈에 벗어날 수도 있고, 언론의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좋다고 종전대로 그냥 가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픽 디자인은 서울대학교의 김진균 교수(성산 아파트)와 이화여자대학교의 김길홍 교수(월계 아파트)가 했다. 칠해놓고 보니 생각보다 호응도가 높았다. 시민 아파트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하나의 작은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일은 모든 시민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에 그래픽 디자인을 보편화시키는 기원이 되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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