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모습을 사진에 남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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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1-21
| 조회수 :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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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서울시 도시경관과 경관지도계장에 있을 때 일이다.
● 급변하는 서울
서울은 600년의 역사 도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어디서 역사성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덕수궁·경복궁에서 역사를 찾는다는 것은 낮 간지러운 일이다. 더구나 도시·건축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말이다.
서울은 다른 도시와 달리 급격한 변화를 겪었던 곳이다. 일제 35년간의 수탈지로서, 6.25전쟁의 폐허에서, 60년대와 70년대의 경제개발의 급류 속에서 정치와 경제의 중앙에 있었기 때문에 변화의 폭도 그만큼 넓을 수밖에 없었다.
전차의 등장과 도시교통의 발달, 폭격으로 인한 폐허와 가마니촌·달동네의 등장, 청계천의 복개와 고가도로, 3.1빌딩과 63빌딩의 건립, 달동네가 다시 재개발을 통하여 고층·고밀의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남한 인구의 1/4이 서울에 집중해 사는 이상한 도시로 바뀌고 말았다. 너무나 빠르게 도시구조가 변했다.
● 기록되지 않는 서울?
이러한 변화하는 도시모습을 단편적인 기록(사진·영화·그림 등)에 의해 엿볼 수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자료는 지금까지는 없었다. 더구나 도시·건축차원의 시각에서 정리된 자료는 더더구나 없었다. 그래서 기록을 하되 이를 사진으로 하기로 했다. 이는 그 당시 부시장이었던 이동님의 아이디어였다.
우리 나라에 사진이 도입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의 선실에서 찍힌 댕기머리 총각 사진이 우리 나라 최초의 사진인 것 같다. 그 후 고종황제를 비롯하여 순종, 영친왕, 덕혜옹주의 사진이 여럿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궁중에서 사진을 꽤나 좋아했나 보다.
사진을 처음 발명한 사람은 프랑스의 루이 자끄 망데다게르로 그는 화가였다. 초기 사진은 기술로서가 아니라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을 했다. 현대카메라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바늘구멍을 통해 영상을 맺도록 한 것으로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였다. 1924년 등장한 소형 카메라 라이카로 말미암아 사진이 생활의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다.
● 서울모습 사진촬영
필자가 경관지도계장에 발령 받기 이전부터 이일은 추진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추진해?할 것인지, 무엇을 어떻게 촬영하고 기록해야 할 것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움을 주신 분은 당시 서울시 정책기획관으로 계시던 강 홍빈(현 서울시 1부시장)님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김광중 실장, 실제 촬영장소를 정하고 촬영방법을 연구할 서울시립대학교의 김기호 교수, 사진작가인 주명덕 선생과 당시 이구락 과장이 함께 몇 번의 조찬 모임을 통하여 방향을 잡아 나갔다.
Kevin Lunch의 「The Image of the City」의 도시경관 분석방식이 참고가 되었다. 서울의 도시경관구조를 역사적·현대적인 랜드마크인 건축물 등 주요 시각적 결절점인 점(node), 세종로 테헤란로 등 주요 가로 경관축인 선(channel), 4대문 안이나 강변 아파트 단지, 달동네 등 동질적인 경관지역인 면(district), 산이나 강 등 자연 지리적 요소인 경계(edge)로 구분하고 각 구분에 해당하는 지역, 도로, 장소에서 특징적 대표적인 촬영 대상지를 선정하기로 하였다.
과연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남대문을 떠올릴까? 남산을 생각할까 ? 이를 위해 도시·건축·조경·지리분야 전문가(교수·학생·연구원·설계사무소 및 용역회사의 회사원)를 비롯하여, 서울지리에 밝은 일반택시 운전자 등 모두 45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렇게 하여 300여 개소를 촬영대상지로 선정하였다.
도시조성의 기본골격과 관계되는 중요요소는 모두 선정하고, 시민의 도시 인지차원에서 중요한 요소, 그 외 도시·건축역사, 도시사회·문화경관, 도시개발계획의 차원에서 추출된 중요 요소 등을 골고루 선정했다.
● 실패를 거쳐서
갈 길은 어느 정도 정했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면서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시각차이가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시문제를 다루는 측과 사진촬영 팀과의 사고의 방식이 전혀 달랐다. 도시문제를 다루면서도 사진기록에 대한 경험이 없었고, 사진은 전문가이지만 도시를 체계적으로 다룬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기에 촬영한 수천 커트의 사진을 버렸다. 도시를 사실대로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보편적으로 사진 작가들은 사물을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아름답게, 또는 문제점을 과도하게 부곽시키는 일반적인 경향을 감안할 때 주의를 요했다.
사진은 사실을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 촬영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형태의 기록은 있는 그대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차츰 같은 시각으로 좁혀지게 되었고 마침내 7,000여 커트의 사진을 찍는데 성공을 했다.
현재 이 필름은 시정개발연구원과 서울시립대학교의 서울학연구소에 보관중이다. 그리고 제2차 서울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하여 금년(1999년)과 내년(2000년)에 걸쳐 촬영 중에 있다. 앞으로 매 5년 주기로 계속적인 촬영이 이루어지리라 본다.
사진에 대한 취미를 갖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문외한이었다면 정말 어떻게 이 업무를 꾸려왔을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 날 것 같다.
촬영한 사진 중에 대표적인 장면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 한가지, 아름답고 드러내 놀만한 사진도 많은데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책에 실어야 하느냐며 발간 심사를 거부한 위원도 있었다. 그래도 실었지만 말이다.
「서울SEOUL 1995/96 도시형태와 경관Urban Form & Landscape」라는 긴 이름의 책이 탄생한 것이었다. 앞으로 발간될 두 번째 책은 어떻게 태어날 것인지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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