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윤혁경 등록일시 200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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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지방속으로] 대전 유성구 '러브호텔 난립' 막았다/조선일보

봉명지구 14만평 개발…2년간 땅주인과 싸움/구청장 "토지엔 공개념이 있다" 허가 유보/시민들도 반대 서명 … 地法도 구청 손들어 줘

행정수도 이전 계획으로 대전시 곳곳에서 건설경기가 활발하지만, 아직도 허허벌판으로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유성온천 인근 봉명지구이다.
지구 바로 인근에 숙박업소를 비롯해서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대형 할인점도 봉명지구의 한쪽 귀퉁이에 문을 열었지만 이 지구만은 아직도 대전시의 허파인 양 녹지로 보존돼 ‘생명의 숨’을 쉬고 있다.

이곳이 바로 시민들과 유성구청이 지난 2년간 힘을 합쳐 러브호텔이 들어서는 것을 막은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98년만 해도 14만평에 달하는 봉명지구는 농사짓는 논이었다. 가을이면 추수하고 남은 벼 밑동이 그대로 드러나 바로 옆 유성온천 유흥가의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충남대나 한국과학기술원으로 밀려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지구도 개발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99년부터 논은 메워지고, 길이 나고 건물이 하나씩 들어서는 모습이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던 개발 바람이 지난해 갑자기 커다란 맞바람을 맞게 됐다. 러브호텔을 건설하겠다는 토지주인들의 허가요청에 유성구청이 갑자기 허가를 유보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병령 유성구청장은 지난해 3월 봉명지구 상업지구 가운데 건축허가가 난 22건 중 무려 19건이 러브호텔이며 허가를 기다리는 9건도 모두 러브호텔인 것을 발견했다. 계획대로라면 14만평 중 절반 수준인 6만4000평에 러브호텔이 들어설 예정이였다. 이 청장은 대학 캠퍼스와 주택가 옆의 땅이 유흥가로 전락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며 건축허가 유보를 결정했다.
  

이 청장은 “토지주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토지에는 공개념이 있는 것이며 잘못된 것을 확인하는 순간 중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이어 “우리집 주변에 술집이 한두 개라면 참을 수 있지만 수십 개라면 곤란한 것 아니냐”고도 말했다.

법적으로 전혀 무리가 없는 건축에 대해 행정관청이 허가유보를 내렸으니 토지소유주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토지주들은 상급기관인 대전시에 행정심판을 요구하는 한편,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대부분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뜻은 좋지만, 과연 성공할까’라는 의견 등 냉소적 분위기가 팽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도 지난해 6월 유성구청에 대해 건축허가를 내주든지 아니면 불허하든지 해야지 유보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일종의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해서 ‘건축허가 유보처분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정을 유성구청에 미뤄 버린 것이다.

그러나 구청의 조치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유성구의 종교계를 비롯해서 시민단체, 충남대학생회 등이 일제히 러브호텔 건립을 반대하며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거리 곳곳에 러브호텔 건립을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붙이고 시청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반대의사를 밝혔다.

당시 반대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황상익(75)씨는 “기존의 유흥가 옆에 또다시 유흥가를 짓는 것은 주변 환경에 미칠 영향에 있어서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잘못된 것”이라며 “월드컵 때도 유성온천의 숙박업소들이 차지 않았는데 또 숙박업소를 지어 난립하게 되면 전체적으로 큰 손해를 볼 것이 명백해 보였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유성구와 함께 앞장섰다. 유성민주자치연합 대표 노중호(40)씨는 “지구 개발계획이 수립된 때는 우리나라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선 때여서 대전시가 지나치게 수익위주로 나갔다”며 “인근 학교에 나쁜 영향을 줄 유흥단지를 만드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토지주들은 유성구청장 등 반대하는 이들에게 집으로 전화를 걸어 폭언을 퍼부으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으며 당시 이 같은 대립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2002년 6월)를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선거를 의식한 행동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돌파구는 지난 5월 대전지법에서 마련됐다. 당시 지법은 건축주 8명이 유성구청장을 상대로 낸 건축불허가 처분 취소소송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청소년들이 잘못된 호기심이나 충동으로 탈선하거나 건전한 인격형성에 방해가 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된다”면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힘입어 대전시도 행정심판위원회를 열어 건축주 20명이 신청한 유성구 봉명지구 건축허가 신청 불허가 처분 취소청구건을 다수의견으로 기각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땅주인들이 대전지법의 결정에 불복해서 항소심을 제기했기 때문. 유성구청이나 시민들은 “1심 결정이 크게 번복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결국 대법원까지 가지 않겠느냐”는 반응이다.

유성구는 봉명지구에 숙박업소 대신 문화의 거리로 조성한다는 방침 아래 개발용역을 주는 등 다른 방식의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이변이 없는 한, 용역결과가 나오면 토지주들이 새로운 개념에 맞게 건축허가를 새로 신청해서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는 개발이 재개될 전망이다.

유성구에 대학이 8개나 되고 문화욕구가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어 서울의 대학로 같은 문화의 거리로 조성할 경우, 경제적으로도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전시민들이 봉명지구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온간 난간을 뚫고 시민과 구청이 한마음이 돼 무분별한 개발이익을 막고 지켜낸 뒤 새로운 대안을 건설 중이기 때문이다.

(대전=심재율기자 jys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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