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 재생계획』수립의 뒷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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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2-2-2
| 조회수 :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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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사동과의 만남 서울에서 600년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파리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목조 건축물과 석조 건축물간의 차이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반드시 그것만은 아니리라. 우리는 60년대와 70년대의 개발시대를 거쳐, 80년대와 90년대의 황금만능 시대를 지나면서 개발, 또 개발에만 매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환경이나 삶의 질은 항상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문화재급의 건조물이 아무 미련없이 하나둘 사라졌지만 누구하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사라져버린 우리의 문화유산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기껏해야 경복궁이나 덕수궁, 남대문 등 몇 개의 박제된 건축물에서 600년의 체취를 느낄 수밖에 없음은 비참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래도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사동과 가회동이 옛것과 현대의 중간위치에서 우리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가 가회동과 인사동과의 만남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도시설계담당 팀장을 맡으면서였다. 그러나 그 당시의 첫 만남은 설래임보다 안타까움, 분노, 무력감이었다.
서울에서 가회동과 인사동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전통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화끈하게 규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롭게 개발을 허용하는 것도 아닌 아주 어중쭝한 자세였다. 김영삼·김대중정부의 계속된 규제완화정책으로 그나마 몇 가지의 규제장치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부터 가회동·인사동에도 예외없이 변화의 바람이 불어와 적지 않게 옛 모습을 잃어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나 정부가 지원대책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적극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도 대안도 갖지를 못했다. 1996년 종로구청장은 가회동을 4종미관지구에서 해제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가 서울시에 제출되었다. 전면 철거를 하고 저층 고급연립주택 단지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를 두고 서울시 도시설계위원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리었다. 전통한옥이 아니기 때문에 보존가치가 없다는 쪽과 도시구조나 집단 주거지환경 그 자체가 전통문화이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국 2000년까지 차일피일 끌게된다. 그 이후 2000년에 84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필요한 것은 매입하여 한옥으로 재생하거나, 소규모 주차장이나 미니 공원으로 조성하고, 한옥으로 유지관리할 수 있도록 무상지원하는 내용의 계획을 수립, 현재 집행중에 있다. 인사동도 수립된 도시설계내용에 따라 지구를 지정해야하나 무리한 규제계획에 대한 주민설득에 자신없는 종로구는 도시설계지구를 지정하지 못했다. 다만, 일부 내용만 준수하는 조건으로 허가를 하고 있었는데 인사동길을 중심으로 서편으로 이미 5층건축물들이 여럿 들어서기 시작했고, 동편으로 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영빈가든이 건설업체에 팔리면서 소위 "12가게"가 헐릴뻔한 사건이 생겼다. '도시연대'·'인사모'등 시민단체가 연대하여 "12가게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 인사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1999년 12월, 2년동안 건축허가를 제한하고, 인사동에 대한 도시설계를 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런 인사동을 만난 첫 순간은 매우 부담스러운 만남이었다.
2. 인사동의 현실 인사동은 3만7천평에 808개소의 점포가 있는데, 그 중 62.6%인 506개소가 소위 문화업종이다. 고미술점이 100여개소, 화랑이 90여개소, 표구사가 40여개소, 필방 및 지업사가 30여개소가 있다. 1960년대부터는 표구사와 필방·지업사가, 1970년대엔 근대식 화랑이, 1980·90년대에는 한정식등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오늘날의 인사동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인사동이 어느 날부터인가 변화의 바람에 휩싸여 본래의 모습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7년 「차없는 거리」가 주범이다. 차 없는 거리에서 펼친 이벤트는 많은 사람을 끌어 모았다. 문제는 사람이 모인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사동은 무엇이던가? 고미술품·골동품·고서적·표구점등의 곰팡이 냄새를 맡을 수 있던 공간이 아니던가? 그 냄새는 아무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청국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들르는 곳이다. 그런 곳에 젊은 20대 30대의 젊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노래방이나 PC방, 25시 편의점이 뒤따라 들어서더니 급기야는 스타벅스까지 당당하게 진주하고 말았다. 사람이 모이니까 장사가 잘되고, 그러니 점포 임대료가 상승하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고미술품·골동품·고서적·표구점은 상승된 임대료를 부담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인 활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골동품 애호가들은 발길을 끊게 되고, 결국 그들 점포는 가회동이나 장안평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골목을 온통 점령한 전통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음식점들이었다.
여기에 또 다시 인사동 길을 새롭게 단장하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김진애씨가 설계한 내용에 대해 평가는 극단을 달린다.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는 나중에 제대로 되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환경변화가 인사동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가 두렵다는 점이다. 차없는 거리가 불러온 부작용이 아직 치유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또 큰 변화요인의 등장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고민스럽다. 이러한 변화를 인사동이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 업종이 사라진 인사동!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변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이를 수긍하지 않으면 계획의 방향을 결정할 수 없다.
3. 재생계획 세우기 "인사동 다시 살리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상당한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말깨나 하는 사람치고 한마디씩 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다 전문가이고, 다 최선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학교에서나 함직한 말들뿐이지 실상을 들여다보고 조언을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87년에 도시설계를, '88년에는 전통문화지대 복원을 위한 용역을 했지만 계획으로 끝나고 말았던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규제만 있고 당근이 없는 계획에 대한 추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딱 하나 있다. 용도변경을 비롯하여 모든 건축행위를 통제하고, 이미 들어선 다른 용도를 강제적으로 폐쇄하거나 아예 전지역을 시나 정부가 매입하여 계획적인 관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는 전혀 불가능한 계획이고,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사람들은 이 일을 직접 맡은 시정개발연구원의 정석 박사, 12가게 살리기 운동을 주도한 도시연대의 최정한 총장, 전통 도시구조 연구가인 경기대학교의 이상구 교수, 전통한옥 연구가인 서울시립대학교의 송인호 교수, 그리고 필자) 이 일에 목숨을 걸었다.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이 좀 과하긴 하지만 그만큼 부담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인사동은 어떤 계획을 세우든지 욕먹을 것은 뻔한 일이고, 욕을 먹더라도 그나마 덜 먹는 쪽으로(바람직하다는 인정을 받는 쪽으로) 계획을 수립할 수만 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서로의 다른 생각들을 일치시킬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2달에 1번은 만나서 미니 토론회를 개최했다. 인사동 골목에 위치한 전통 음식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론을 했다. 막걸리 사발에 파전 한 접시가 고작이긴 하지만 우리의 만남 회수가 더할수록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방향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인사동은 변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변화의 폭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급적이면 변화속도를 지체할 수 있도록 하자는데 합의를 했다. 물론 전통환경을 유지하기 위한 물리적인 도시구조의 틀을 가급적 유지하자는데까지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가게들을 통해서 오래된, 전통틱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눈요기감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해야하며, 한옥이랑 골목길을 가급적이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여러 필지를 합한 대형개발을 억제하고, 토지이용도를 높여 토지가격이 앙등하는 일이 없도록 컨셉을 정했다. 이를 위해 법령과 제도의 많은 부분을 개정했다. 가령, 골목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축법의 건축선 후퇴기준(너비 4m이하 도로변에서 건축할 경우 도로 중심에서 2m를 후퇴하는 선)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였으며(2000.6.15 건축법시행령 개정), 한옥의 건축을 유도하기 위해 추녀를 2m까지 돌출해도 건축면적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하였으며(2001.9.15 건축법시행령 개정), 인사동 안쪽의 건축물 높이를 3층 또는 4층으로 건축하도록 하면서 건폐율을 80% 또는 70%로 완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이곳 이외에서는 건폐율이 60%를 넘지 못하도록 한 도시계획조례를 2000.7.15 제정). 골목을 확장하지 않음으로 주차장의 설치를 금했으며, 주차장을 면제할 때 부과되는 비용이 1대당 2∼3천만원 이상이 되지만 종로구와 협의하여 대폭 완화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구단위계획을 수립시에는 주차장법에 의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도록 도시계획법의 개정을 추진중에 있다.
그리고 공공분야의 환경개선에 필요한 비용은 서울시가 직접 투자하고, 동·서쪽에 각각 1개소에 기존 한옥을 공공이 매입후 수리하여 마당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부담하기로 하여, 인사동에 대한 서울시의 관심을 가시적으로 표명함으로 규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한다. 그리고, 골목안의 기존 한옥을 개·보수할 경우 가회동처럼 최고 3천만원까지 무상지원하고(추가로 2천만원까지 무이자 융자),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한 문화지구를 지정, 전통업종에 대한 제세공과금을 면제하고, 가옥주에 대한 재산세도 감면하는 등 물심양면의 지원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4. 인사동에 대한 바램 "인사동에만 왜 지원을 하느냐?"하는 물음에 대하여 답하고자 한다. 인사동을 왜 보존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과 같은 이유에서다. 경제활동의 목적은 이익창출에 있다. 인사동은 경제활동에 있어서 그리 이익이 있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이익이 생기는 곳으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손해를 보는 쪽은 서울시와 정부일 뿐이지 토지주나 건축주는 아니다. 결국 서울시민이 우리나라 국민이 손해를 볼 것이다. 문화나 전통이 없는 도시나 국민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익을 보는 자가 그 부담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세금을 통하여 인사동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린벨트를 보존해야 한다지만 막상 그린벨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상대적인 손해에 대해서는 모른채 한다면 당연히 해제에 대한 압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을 사랑해 주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 부담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PC방이나 노래방이 스스로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싸구려 국제불명의 제품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보행공간을 완전히 점령한 포장마차가 파리를 날리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인사동이 인사동답게 오래 유지될 수 있다. 그러한 일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책임질 몫이다. 상인들도 인사동의 체통을 지키는 일에 전심전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울시가 아무리 많은 비용을 투입하여 환경을 개선한다해도 상인들이 제 욕심만 챙긴다면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저급품이 판을 치게 해서는 안된다. 인사동표의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없이 이용자 탓만 하고 있다면 스스로 소멸하고 말지도 모른다. 인사동을 관리하는 몫은 인사동상인 협의체가 해야 하리라 본다. 환경개선을 할 일도, 상가 질서를 유지하는 일도, 인사동을 외부에 널리 알리는 일도 모두 상인협의체를 통한 자발적인 규약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그래야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다.
5. 사족 인사동 도시설계(지금은 지구단위계획)의 용역을 발주하고, 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깊숙히 관여하다가 2000년 11월 도시관리과 도시관리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끝까지 내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중간과정에 적지 않은 자문을 통해 계속적인 참여를 했다는 데에 위로를 삼는다.
조만간 지구단위계획이 도시계획으로 결정되고, 내년부터는 연차적인 환경개선작업이 시행되리라 믿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게, 계획한 대로 간다고만 장담할 수는 없으리라 본다. 언제 어떤 돌출상황이 생길지 모르고, 또 이를 수행하는 구성원들의 마인드가 어떠하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해결한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일에서만은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뒷마무리를 잘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서울시를 믿고 따를 것이다. "서울시는 언제나 계획만 거창하게 세웠지 뭐 되는 것이 있느냐"는 질책을 듣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 전자사보 200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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