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飛行看山 旅行記-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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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혁경 | 등록일 : 2003-12-6
| 조회수 :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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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번째 바라본 파리 세 번째 마주한 파리! 그래서 더욱 정겹다. 인천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다음날 오후 6시 반에 파리 드골국제공항에 무사히 안착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것은 언제나 불안하다. 인간의 보잘 것 없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나를 두렵게 한다. 드골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삼성 핸드폰 광고물이다. 파리에서의 한국제품의 광고를 마주한 기분, 모두들 대견해 하는 눈치이다. 관광가이드 말에 의하면 인기가 여간 아니란다. 기분이 좋았다.
1.1. 정제된 도시풍경 파리시는 105만㎢로 서울시의 약 1/6정도이다. 지금의 파리는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시테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필립2세(1165~1223)때에 성벽을 쌓고, 루브르궁, 노트르담의 성당을 건설하였고, 19세기 파리 대계획에 의하여 지금의 가로형태가 형성되었다. 대부분 1848년에서 1852년 사이에 조성되었다. 당초는 5층의 건축물로 되었으나 그 후 1~2개 층의 증축을 통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석조 건축물들의 특성상 보존이 용이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오랜 역사의 두께를 잘 간직하고 있었다. 파리사람들의 파리사랑은 대단하다. 2차대전시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 스스로 적에게 파리를 적에게 내어주었을 정도이다.
그 결과 지금은 1년에 7천만명의 외국 관광객이 파리를 다녀가고 있다. 옛 모습 그대 유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공중화장실이 불편하고 주차장이 부족하고 공공시설도 부족하지만 그들은 잘 참고 견디는 것 같다. 스스로 파리지앵임을 자랑으로 여긴다고 했다. 외부의 엄격한 관리와 달리 내부는 엘리베이터도 놓고 편리한대로 수리하여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가로를 따라 벽면선을 가지런히 정렬하고, 이웃과 벽을 마주 연결시키고 가운데에 중정을 둔 형태다. 1층은 전부 상점으로 사용하고 2층 이상은 대부분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1층에 주유소나 섹스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1.2. 수변경관 파리 중심을 가로지르는 세느 강에는 32개의 다리가 있다. 홍수가 없기 때문에 수위가 도로면과 거의 비슷하다. 강물에 어리는 도시풍경은 매우 아름답다. 특히 야간의 경관은 더욱 색다른 모습이다.
파리의 다리는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2개의다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리위에 주택이 있었다. 미관을 해치고 교통 소통에 지장이 된다하여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로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내린다’는 싯귀의 미라보 다리,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생긴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에펠탑이 가장 잘 보이는 2층 다리인 비아르겜 다리 등, 각각 개성을 지닌 다리들이 파리의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규모면에서는 서울의 한강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폭 1km가 넘는 한강에 비하면 개울 수준이다. 물은 1997년 처음 본 것 보다는 상당히 맑아진 것 같다. 세느 강에는 상당히 고가인 선상가옥이 있다는 사실, 또 다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1.3. 가로풍경 상제리제 거리는 파리의 또 하나 명물이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열린 12개의 대로중 하나이다. 늘어선 가로수와 가로변에 위치한 카페, 유명 상품점이 줄지어 서 있다. 연인들의 사랑을 키우고 문학이 꽃피는 거리다.
그러나 파리의 거리는 깨끗한 편은 아니나. 청소원이 일할 수 있도록 휴지나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기 때문이다. 개똥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들레르 현재 파리시장이 당선되면서 몇 가지 일을 추진했는데, 도시의 거리를 차량에서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일을 시작했다. 시내 중심지엔 버스통행을 금지시키고, 버스전용차선엔 턱을 만들어 버스가 다른 곳으로 통행할 수 없도록 했다. 그 덕분에 우리의 시내 버스투어는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도심은 구경도 못했다. 1997년과 2000년에 파리시내 구석구석을 다닌 경험이 있는 나는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퐁피두센터(Richard Rogers & Renzo Piano가 설계하고 1971~1977에 건설함), 레알시장 등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파리의 신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라 데팡스(La Defence)에도 갈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파리의 명물인 리도 쑈를 관람하기 전에 개선문과 상제리제 거리를 산책했다. 넓은 보도, 줄지어선 마로니에와 플라타나스의 가로수, 가로변의 카페, 고가 명품전, 그리고 각양각색의 관광객과 쇼핑객이 어울린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서울에 이런 거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세종로 가로경관조성계획을 추진한 본인으로서는 부러웠다.
1.4. 파리의 지하 하수도 유럽에 하수도에 대한 관심은 14세기 중반에 페스트가 창궐하고 부터였다. 크레타섬의 궁전은 BC 2000년에 이미 수세식 변소에 배수관이 있었고, BC616년에는 로마에 하수도가 있었다고 한다.
파리는 1200년경 우수배제를 목적으로 측구를 건설한 것이 처음이며, 그 후 1370년년 경에 당시 파리시장 Hugues Aubriot 시장이 세느 강 해안을 따라 하수로를 건설했고, 지금의 형태를 갖춘 것은 나플레옹 1세 때이다. 1850년 세느 주지사인 Haussmann 남작과 엔지니어인 Eugene Belgrand가 현재의 파리의 하수관거와 상수도 공급 네트워크를 설계하였다. 1878년에는 600km나 되었고, 계속적인 확장 공사를 통해 현재 2,350km에 달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기도 하고,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달리던 장면도 파리의 지하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수도의 시스템이 얼마나 정교하게 되어 있는지 가정에서 하수구로 흘린 분실물을 신고하면 약 80%는 찾아 준다고 한다. 1년에 대략 3,500여건의 분실물이 신고 된다고 한다.
1.5. 몽마르뜨 언덕과 성심사원(Basilique Du Sacre Coeur) 3번째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 셈이다. 화가지망생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고, 미래의 꿈을 키운다. 고호, 고갱, 마네, 로트레크, 베르나르, 르누아르, 세잔, 피카소등 수많은 화가들을 이곳을 거쳤다. 작가지망생이라도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다. 각자 개성이 다른 풍의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어 관관객의 눈요기 감으로는 적격이다. 시간이 있다면 주변의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는 것도 추억을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그림을 한점 구입하고 싶었는데, 비용도 만만찮고, 또 그 작가마저도 나타나지 않아 사진으로만 간직하고 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한쪽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몽마르뜨 언덕에는 성베드로 성당과 성심사원(원래 정식이름은 사크레 쾨르 사원임)이 있다. 성베드로 성당은 아담한 크기였으며, 성심사원은 그 규모면에서 파리시내를 위엄있게 내려보고 있는 형상이다. 비잔틴 양식의 하얀색 돔 3개가 눈부실 정도로 빛난다. 예수의 성심(聖心)에 바쳐진 성당으로 보불전쟁 이후 파리 시민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지어졌는데, 카톨릭 성도들의 기부금 4천만 프랑으로 40년에 걸쳐 1919년에 완성하였다. 돔까지의 높이는 80m, 건설 당시에는 파리의 경관을 헤친다고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몽마르뜨 언덕의 공동묘지는 18세기에 조성되었다. 밀레, 드가, 스탕달, 하이네 등 세계적인 예술가가 묻혀 있는 또 하나의 관광지이다.
1.6. 에펠탑과 한글로 “평화‘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평화의 문 파리의 대표적인 상징물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기념과 만국박람회 개최 기념으로 세운 것이다. 토목구조가인 에펠(Gustave Eiffel)에 의해 설계되고 건립되었다. 공모에 의해 당선되었는데 건립당시에는 시민들로부터 환대를 받지 못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에 볼품없는 철 구조물을 세운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장 격렬하게 반대한 사람은 여자의 일생을 쓴 모파상이었다. 그런데 에펠탑이 건립되고 나서 모파상이 가장 많이 이를 이용했다고 한다.
안테나를 포함해 320.7m이고, 꼭대기까지 1,652개의 계단으로 되어 있다. 이에 사용된 들보와 철판이 1만 3,038개, 리벳이 105만 846개로서 무게가 7,175톤에 이른다. 에펠은 기중기를 이용해서 25개월 만에 완성시켰다. 당시 발명된 엘리베이트를 에펠탑에 설치함으로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건설된 1931년까지 근 4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로 가광을 받았다.
이 에펠탑의 잔디공원이 끝나는 곳, 즉 육군사관학교 앞에는 2000년도에 건립된 평화의 문이 서 있다. 평화라는 각 나라의 글씨로 쓰여 있는데 한글 ‘평화’가 아주 크게 눈에 띄었다.
1.7. 파리에 개설되는 7일장 시장 파리에도 우리나라처럼 7일장이 열린다고 한다. 시내에는 슈퍼나 대형 백화점이 흔하지 않아 생필품을 구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처럼 시내 곳곳에서 7일장을 연다고 했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 향신료에서부터 신발이며 옷가지까지 다양했다. 많은 시민들이 알뜰하게 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8. 뤽상부르 공원 안의 자유의 여신상 17세기 초 앙레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를 위해 지은 궁전으로 현재는 상원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공원에는 파리의 연인들이 짝을 지어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원본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 베르사이유(Versailles) 궁전 ‘짐이 곧 국가다’라고 선언한 루이 14세가 왕의 절대적인 권력과 중앙집권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해 지은 베르사이유 궁전은 1634년 루이13세의 사냥궁으로 세워졌다가 그의 아들인 루이 14세가 확장을 한 곳이다. 이 궁전의 설계는 건축가 르 보(Le Vau), 르 브렁(Le Brun), 망사르(Mansart)가 했다. 동원된 인원만도 2만2천명, 그기에 말 3천마리를 동원, 50년간 건축했다. 세계문화기행 24p/임정의/창해/2002 1682년부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까지 107년간 왕궁으로 사용되었다. 그 화려함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1871년에는 프르시아의 왕 빌헤름 1세의 대관식을 갖는 굴욕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굴욕을 역사를 설욕하기 위해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의 강화조약을 이 곳에서 갖기도 했다.
수 백개의 화려한 방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일부분만 개방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헤라클레스의방(매주 월, 수, 목요일에 연회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천정에는 315㎡의 천정화가 있는데, 신의 대열에 들어가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을 볼 수 있음), 축제의 방(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다이아니의 방, 마르스의 방, 머큐리의 방, 아폴로의 방등의 있음), 전쟁의 방(루이 14세의 초상화가 있음), 거울의 방(길이73m, 너비 10.5m, 높이 12.3m로 17개의 창문과 17개의 대형거울로 이루어진 화려한 방으로 주로 가면무도회를 열었음), 평화의 방, 왕비들의 방(왕비의 침실, 귀족의 방, 경호원들의 방, 나플레옹 황제의 대관식장면을 그린 다비드의 대형 그림이 있는 나플레옹 기념관), 전쟁 갤러리 등이 있다.
루이14세는 이 궁전을 지어놓고 지방의 영주들을 초청하여 1년 반 이상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언제 반기를 들지 모르는 지방영주들을 불모로 잡아 둔 전략의 하나라고 한다.
특히 정원의 아름다움과 100ha나 되는 방대함은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잘 정제된 부분과 자연 그대로인 부분으로 나뉜 정원에는 15만 그루의 각종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한 가지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으로 강행군을 한 탓에 우리는 그 정원을 앞에 두고 주저앉고 말았다. 발로 둘러 볼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몇 장의 기념사진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어 매우 아쉬웠다. 이정원은 르 노트르(Le Notre)가 설계를 했다.
터키의 술탄 압둘 메짓트 1세가 베르사이유(Versailles) 궁전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스탄불에 그 모습을 본따서 건축한 궁전, 돌마바체 궁전(Dolmabache Palace)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1.10. 현대적인 피라미드를 설치한 루브르 박물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가 전시되고 있는 세계 최고의 미술관이자 박물관이다. 원래는 왕궁이었는데 1774년 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793년 박물관으로 재탄생하였다. 나플레옹이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노획해온 수많은 귀중품을 비롯해서 무려 30만점의 소장품이 있다. 아마도 이를 다 보려면 일주일은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2시간 만에 그 과정을 주파했다. 놀라운 감상법이 아니던가?
루브르 박물관 초현대식 피라미드의 아래 부분에 나선형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는 아이 엠 페이(I. M. Pei)가 설계했다. 밖에 설치된 유리로 된 피라미드 길이 35m, 높이 21m, 사면의 경사각은 51.7°, 그기에 20mm 두께의 유리가 다이아몬드형으로 부착되어 있다.
1.11. 요람에서 무덤까지 보장하는 사회복지 프랑스는 사회복지가 어느 나라보다 잘 되 있는 나라다. 수입의 48%를 세금으로 걷어서 국가가 교육·의료·노후보장을 해준다. 퇴직후(55세부터 퇴직이 가능하나 보통 61세에 퇴직하는 경향임)에는 마지막 봉급의 85%를 연봉으로 지급하며, 진료·입원·투약등은 거의 공짜수준이다. 프랑스에서 아이를 임신하면 누구나(출생 속지주의를 택하기 때문에 유학생인 경우도 같은 혜택을 받음) 월 25만원씩 출산준비금이 지급되며, 출산비는 무료이고, 출생 2달 반이 되면 국가탁아소에 맞길 수가 있는데, 이 경우도 분유, 귀저기등 필요한 모든 것은 국가의 부담이다. 뿐만 아니라 3세까지 매달 25만원씩 지원을 받고, 4세부터 유치원까지 아동의 특기(음악. 미술 등)를 공부하기 위한 비용이 지원되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까지 국가가 비용을 부담하는 의무교육이다. 대학에 입학할 경우 처음 18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나머지는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임신에서부터 대학졸업까지 전부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 부럽다. 그러나 최근 노령인구의 증가로 국민연금부담이 가중되어 파업을 하는 등 사회적인 문제가 없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출산율 저하와 노인인구의 증가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프랑스의 사회복지를 맛보기도 전에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1.12. 의무적으로 보내야만 하는 바캉스 프랑스는 바캉스의 나라이다. 1년을 벌어서 여름 40일간 바캉스를 떠난다. 돈이 없어서 바캉스를 떠날 수 없는 경우 시정부가 지원을 해서라도 반드시 바캉스를 보내는 이상한 나라이다. 그 이유가 매우 타당하다. 프랑스인들은 피부에 곰팡이가 많이 피는데, 일광욕은 곰팡이를 치료하는데 최적이란다. 만약 바캉스를 못간 경우 겨울에 곰팡이 치료환자가 부쩍 늘어나는데 이를 국가가 부담해야하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을 주어서 바캉스를 보내는 것이 훨씬 이익이 되기 때문이란다.
바캉스 기간 중이라도 파리시내에서 업무를 보는 최소한의 사람이 필요한데, 그들 50만명을 위해 세느강변에 인공 모래해안을 만들어 바캉스를 즐기게 하는 ‘파리 뽈랑제’가 2002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이태리에서 야자수와 모래를 공수해 만든다고 하니 정말 바캉스를 무진장 즐기는 나라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1.13. 프랑스의 엘리트 교육 어느 나라이던 그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가 있게 마련인데, 프랑스는 철저한 사전 교육을 통해서 지도자를 육성 공급하고 있는 나라이다. 천재 1명이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 건희 삼성회장의 천재양성론에 동감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철저한 평등교육을 실시한다. 신분의 차이로 경제적인 이유로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도록 사회적인 보장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 통과하는 확률은 60%정도이다.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졸업생도 있다는 말이다. 졸업시험에 통과한 사람만이 대학입학 자격을 얻는데, 대학을 졸업했다 해서 특별히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과 큰 차이는 없다고 한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 특별한 목표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대학을 선택하는데, 그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은 3년간 다녀야 하는데 1년에 24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1주일에 20권 이상의 책을 읽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 갈 수가 없다. 의대의 경우 2000명이 입학하면 겨우 10~15명만 졸업할 수 있다고 한다. 적당히 눈치 보아 졸업하는 우리의 대학과 비교한다면 부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듦은 웬일일까. 박사까지 졸업하기 위해서는 10년에서 15년 이상 걸린다고 하니 여간해서 대학을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학을 졸업한 것만큼 사회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다는 점에서 그 모든 것을 선택하고 극복한다고 한다.
프랑스를 이끄는 지도자 육성 기관인 그랑제꼴이 있다. 정치인, 행정가, 기술자 등 프랑스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 대부분이 이 그랑제꼴 출신이다. 그랑제꼴은 3년 과정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로서 2년간 준비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각 분야별(제빵분야, 복장분야, 정치분야, 행정분야 등 여러분야가 있음)로 100명 정도를 뽑는다. 그리고 그랑제꼴에서는 3년마다 각 분야별 20명만 뽑는다. 3년간 수업과정을 마치면 그 다음에 20명을 뽑고, 2번만 응시할 수 있다고 하니 얼마나 어려운 시험인가 알 수 있다.
학생 1명당 2명의 교수가 배치된다. 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경우에는 학생 때부터 자기가 선호하는 정당을 택한다. 사회당, 녹색당을 미리 선택하고 그 정당 행사에 참여하면서 착실한 수업을 거친다. 그 과정을 마친 그들은 전문 정치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선후배로 한 정당을 이끄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정치문화를 되돌아보게 한다. 학생들에게는 수업료는 전액 무료이고 매달 도서구입비로 60만원씩 지원 받는다. 그들이 아무 은행에서 학생증을 제시하면 조건 없이 얼마든지 융자를 해준다. 언제든지 융자비용을 갚을 수 있는 사회적인 신분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의 하향 평등교육에 대해 한번쯤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교육시스템이 과연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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