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이 있는 곳이 바로 명당?  
작성자 : 윤혁경 | 등록일 : 2001-12-12 | 조회수 : 783


한 집안의 흥망이 집 터나 묘 자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풍수지리설의 신봉자들이 아직도 많다. 집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조상 탓을 하거나 집터 묘 터를 잘못 잡아 일어난 일이 아닌가 의심을 하기도 한다. 가끔은 굿을 한다던가 제(祭)를 올리기도 한다. 기(氣)가 센 곳은 연못을 파거나 큰 나무를 심어 순화시켜 보기도 한다. 인생의 목표를 수복강령(壽福康寧)에 두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가 않다.
오늘날의 복잡한 도시 환경에서 발복(發福) 가능한 터를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1100만명이 거주하는 서울에서 명당 터가 얼마나 있겠는가? 명당은 특정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곳을 명당으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통이 편리하고 시장과 문화 공간의 접근이 용이하다면 현대판 명당일 확률이 높다. 자녀들이 다닐 학교가 가까이 있다면 좋은 조건이다. 여기다 주위 경관이 수려하고 물이 잘 빠지고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면 더더욱 좋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 보다 좋은 이웃이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주위 환경이 교육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설명해 주는 교훈이다.
8학군으로 8학군으로 몰려드는 진기한 풍경이 결코 생소하지 않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자녀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면 인심 좋은 동네를 최우선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삶의 지혜는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다운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면서 터득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웃끼리 인사를 나눌 정도는 되어야 하고, 경조사에 참여할 정도가 된다면 살아 볼만한 곳이다. 가끔 이웃끼리 소주한 잔 정도 나눌 정도라면 살아도 좋은 동네일 것이다.
한밤중에 '불이야'하고 외치면 모두들 자기집에 옮길까 봐서 뛰어 나오지만 '도둑이야'하고 외치면 다칠 것을 걱정해서 꼼작 않는 동네는 이사 갈만한 곳이 못된다.
아이들이 마을 어른을 멀뚱히 쳐다보고 모른체 하는 동네는 이사 갈 엄두를 내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싸움질이나 하고 진정 투서가 난무하는 마을 이라면 살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민원인을 가장 많이 접촉하는 직종이 건축직 공무원이다.
필자가 만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중에 건축 관련 진정의 해결을 위해 만난 사람만 하여도 수만 명은 넘을 것이다.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구청별로 동(洞)별로 전혀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지 이제는 관상을 볼 정도가 되었다. 척 보면 진정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를 짐작하게 되고 또 대부분이 짐작대로 진정이 풀리곤 하였다.

D구의 C동과 S구의 P동은 진정이 유독 많은 동네이다. 구청 전체 진정의 40 - 60%가 건축 관련 진정인데 C동과 P동의 진정은 구청 전체의 진정 중 30% 이상을 차지할 정돈?유명한 곳이다. 발생된 진정은 상대편이 만신창이가 될 때 까지 싸운다. 사소한 내용도 목소리를 높이고 물리적인 싸움으로 변하여 경찰의 신세를 지는 경우도 많다.
반면에 용산구는 진정 빈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진정을 하더라도 이웃과의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한다. 법과 규정을 설명해 주면 이해를 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행정기관의 도움을 정중히 요청한다.
무조건 목소리만 높이고 초 법적인 조치를 원하는 다른 지역의 진정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유인즉 다른 지역과 달리 한 곳에서 뿌리를 오래 내린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인 것 같았다. 2 - 3대를 한 곳에서 살기 때문에 그 동안의 교분을 감안한다면 작은 불편 정도는 서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설령 새로 이사를 왔다 하더라도 그 지역의 분위기에 눌려 감히 나서지를 못한다.
반면에 주민의 이동이 잦거나 새로이 조성된 동네는 이웃간의 교분이 별로 없어서인지 비교적 진정이 많은 편이다. 지역에 대한 애착심도 별로 없고 이웃과 자주 대화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식인들이 모여 사는 곳이나 소위 부촌(富村)이라는 곳에서도 진정이 많고 해결 또한 쉽지가 않다.
양보할 줄 모르고 자존심의 대결로 치닫기가 일쑤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고 할까 조금도 굽히지를 않는다. 마치 양보하는 것이 전쟁에서 패하는 것으로 알고 있을 정도이다
공무원들도 이런 경우는 중재하려 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했다간 구설수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어느 두 회사의 사장들이 사생활 침해를 다투는 사건이 있었다. 본인들은 나서지 않고 자신의 회사 중역들을 내세워 대리 진정을 하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재량이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회사 사장을 위해 충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는데 목적 달성 이외는 생각지도 않는 것이 였다.

이런 마을이라면 거저 준다 하더라도 살고 싶지가 않다.
사람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인간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는 훈훈한 동네가 있다면 설령 다른 조건이 나쁘더라도 한번 살아 봄직한 명당 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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