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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울 찾기 그 후 …….. 조 인 숙*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비학위과정 객원학생 자격으로 미국 뉴욕에서 약 일 년을 살고 서울에 돌아와서 새로운 일이라고 시작했던 것 중의 하나가 ‘서울찾기’라는 답사모임이었다.
그 이전 이미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 문화재 및 유적지 답사를 열심히 따라 다녔었지만, 그 때 새삼스럽게 서울이라는 곳을 특별한 대상으로 하는 답사하는 모임을 만든 것은 사실 세계적인 대도시 뉴욕 및 도쿄에서의 경험에 의한 착안이었다.

뉴욕에 살면서 당시 살고 있었던 도시 및 그 도시의 건축을 좀 더 아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뉴욕의 건축(the Architecture of New York City)’과 ‘뉴욕의 조형물(Sculptures and Monuments of New York City)’이라는 과목을 수강했었다.
강의는 강의실에서의 슬라이드 쇼와 현장강의로 구성되었었다. 현장강의의 일환으로 뉴욕 만하탄의 남쪽 끝 보울링그린에서부터 북쪽 할렘까지 건축물 및 기념물 등을 샅샅이 답사하면서 도시 및 건축의 역사와 문화발전에 대해 보이지 않는 먼 곳이 아닌, 현재 살고있는 현장에서, 축소 복사된 것이 아니고,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1대 1의 실물을 대상으로 공부를 했다.
또한 그 무렵 뉴욕을 오가면서 항공료 절감의 일환으로 도쿄(東京)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자주 탔었는데 그럴 때마다 도쿄에서 하루 이틀씩 지내면서 할 수 있는 한 도쿄의 구석들을 답사했었다.
이는 도쿄탄테이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도쿄대학교 건축과의 후지모리(藤森照信) 교수께서 주도하는 도쿄탄테이(東京探偵い)라는 모임 및 책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도쿄탄테이란 도쿄의 옛 골목들을 마치 탐정놀이 하듯이 구석구석 답사하면서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일종의 답사운동이었다.

반면에 한국에서 필자가 건축학과 학생이었던 1970년대 초, 제일 먼저 배웠던 것은 당시에는 가 볼 수도 없었던 이집트 및 그리이스 건축이었고, 근대건축으로 유럽의 건축을 배웠고, 현대건축으로는 미국의 건축을 배웠었다.
그것도 책을 통해 사진이나 도면으로 축소된 것들이었을 뿐 도시의 규모는 상상하기 어려웠고 건축물의 실제 크기는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고전 및 근·현대를 막론하고 한국의 건축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태어나서 계속적으로 살고 있는 도시-서울의 건축은 단 한 번도 학교에서 다룬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서양의 건축만이 건축의 전부인 듯이 배웠었고, 우리는 늘 너무 먼 곳만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서 서울에 돌아온 이듬해인 1991년 초봄에 결심을 하여 필자가 직접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 특별프로그램으로 ‘서울찾기’ 라는 답사모임을 만들었다.
일칭하여 ‘마을 밟기’라고도 했었다. 서울의 역사·문화에 대해 내노라는 전문가들의 초청강연을 기획했고, 강연과 함께 현장답사 및 토론회를 기획했다.
현장답사는 인왕산을 중심으로 하는 ‘우대’부터 시작하여 한강 및 아차산까지 였다.
이는 우리의 삶을 담고 있는 건축 그리고 도시의 골격과 역사와 문화를 실제의 척도로 느끼면서 서울의 부분부분을 밟아보자는 의도였었다. 뜻밖에 호응도 있었고 수확도 있었다.

첫 번 ‘마을 밟기’는 인왕산 동·남·서남록의 답사로 청운동에서 출발하여, 신교동과 효자동, 옥인동, 누상동, 사직동을 거쳐 행촌동에서 끝났다. 이른바 서울의 우대·아래대 중 ‘우대’의 주요 부분을 두루 거친 것이었다.
‘우대’라는 말은 지역적 구분의 냄새를 풍기는 말로서 서울 성내의 서북쪽 지역, 곧 인왕산 가까운 동네를 이르는 말이었다. 첫 번 ‘마을 밟기’를 한 일요일 오후 사직동의 한 비좁은 골목을 비집고 나온 회원들은 뜻밖의 수확을 거두었다.
‘마을 밟기’ 회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이 동네의 평범한 주택들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이국적인 2층 짜리 벽돌건물이었다.
그것은 1904년 창간된 항일민족지〈대한매일신보〉의 사옥이었고 이미 다가구 주택으로 변해버린 그 건물은 역사적으로 충분한 보존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발견이 안 되어서 이미 퇴락되어 보존상태가 급속히 악화되어 있었다.
이 버려진 문화유산의 발굴은 뜻밖의 수확이자 조그만 보람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멀리 이집트·그리이스의 유적지들은 찾아다니면서도 서울에 살면서 집 근처에 오래 쌓여온 흔적에는 무심한 것이 우리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다.
‘서울찾기-마을 밟기’의 취지는 바로 이 가까운 우리의 주변, 즉 서울의 구석구석을 건축적으로 그리고 도시학적으로 새로이 밝혀보자는 것이었다. 근·현대사의 흐름에 따라 변모해 온 건조물들도 더듬어보고, 남아있는 유적들도 찾아보고 하면서 서울이 가진 600년 세월 속에서 변화의 뒤안에 있는 것들을 다리품 팔아가면서 직접 찾고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서울찾기’의 구성은 3주를 한 단위로 했다.
매 단위마다 한 주제를 택해서 첫 주는 전문가 초빙하여 사전에 대상 답사지에 대한 강의를 듣고, 두 번째 주에는 사전에 강의들은 장소들을 답사하고, 마지막 주에는 답사에 대한 토론회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을 하였었다.
‘서울찾기’에 동참하였던 회원들은 첫 번 째 순서였던 인왕산 주변을 답사한 후 “등산과는 또 다른 일종의 보물찾기 같은 흥미진진한 시간들을 가졌었다”고 입을 모았고, 토론회를 통해서 회원중의 한 사람은 “단지 건축을 떠나서 생활과 사고방식이 깔린 역사, 골목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꼈다”고 피력한 바도 있다.

‘서울찾기’를 진행하는 동안에 비록 어려운 일도 많았었지만 보람도 컸었다. 서울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사람 하면 알 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원로 김영상 선생님을 모시고 600년 서울의 변모와 한강을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 및 서울태생이거나 서울에 거주했던 역사적인 인물들에 관한 강의도 들었다.
김영상 선생님과 함께 서울향토사학회 답사에 합류했던 아차산 답사는 아차산의 발굴을 결정하게 하는 중요한 모임이 되기도 했었다. ‘서울찾기’는 이렇듯 뜻과 의지로 순수하게 시작되었었고 비록 적자를 면치못했었지만 경직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한동안 잘 운영이 되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필자가 운영하는 건축사사무소의 경영 악화로 피치 못하게 사무소가 이전을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장소제공 및 재정후원을 할 수 없게 되어 급기야는 중단을 하고 말았다.
마음속으로는 늘 기회가 되면 계속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10년이 흐르도록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찾기’는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지 오래된다.
당시에는 시민단체라는 민간기구는 개념조차 없었으나 지금은 서울을 사랑하는 새로운 시민단체들의 답사모임이 많이 생겼고, 최근 한 외국인이 유사한 답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코리아헤럴드를 통해서 간간이 보고 있을 뿐이다. 그 후 서울은 정도 600년 잔치를 크게 치루었다.
또한 서울시는 남산 제모습찾기, 남산골 한옥마을 조성, 걷고 싶은 거리 만들기, 역사탐방로 공사 및 북촌마을 가꾸기 등을 통해 새삼스럽게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게다가 새로이 시작된 서울이야기 공모는 성원 속에 해를 거듭하고 있다.

10년을 보내고 나서 이제와 생각하니 비록 사무소가 어려웠어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서울찾기’를 했었더라면 역사도시 서울을, 적어도 사대문 안의 옛 도심(都心)을 온통 재개발 주상복합 고층빌딩으로 얼룩지게 내버려두는 것으로부터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사라져 가는 동네와 뒷골목, 그리고 남아있는 문화유적들만이라도 제대로 살피고 지키는 ‘서울찾기’ 모임을 재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2000년 서울시가 주최한 제4회 서울이야기에 뽑힌 글)


* 조인숙 선생님은 매우 특이하신 분 중의 한 분이십니다. 남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은 분야의
* 일들에 매우 관심이 많으신 분이지요.
* 가령, 삼청각이 헐릴 뻔했었던 일을 막았던 일이라던가 한옥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시는
* 분이랍니다.
* 마주하여 말씀하시는 모습은 영낙없이 다소곳한 조선여인네 모습이거던요!
* 그런데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답니다.
* 현재 「다리건축」대표로 계시고, 대전 실버토피아 노인복지회관과 중국 베이징 레져클럽하우
* 柳園을 설계하였고요, 그분은 글을 쓰시고 책을 번역하는데도 남다른 재미를 갖고
* 계시답니 다.
* archforum 웹진에 「600자 斷想」을 연재 중인데 여러분에게 유익한 고민꺼리를 제공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