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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아파트, 도시의 잡초 …….. 김 종 보* 
     
   


서울과 대도시의 무성한 아파트 숲은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그 덕에 나도 아파트 한 채를 얻어 살고 있으니 아파트를 대놓고 타박하기란 매우 곤란한 일이다. 특히 수많은 무주택자들이 아파트 입주할 날만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우리 풍토에서 아파트와 관련하여 비판적인 말을 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그런데도 아파트를 보면 자꾸 잡초가 연상되는 이유는 빈땅만 있으면 무성하게 자라나고, 한 놈이 자라나면 그 근처로 비슷한 아파트들이 돋아나는 까닭이다. 또 아파트가 한 번 차지한 땅은 이제 아파트만 들어설 수 있을 뿐, 어떤 단독주택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한다. 이러니 아파트는 도시생태계의 가장 생명력 있는 건축물로 분류되기에 손색이 없다.

아파트는 원래 그 성격이 건축물이고 용도는 주거용이므로, 건축법 및 도시계획법에 의해 건축허가를 받아야 할 하나의 건축물이다. 그러나 이것은 주택건설촉진법이 1977년에 제정되기 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주택건설촉진법은 무주택자들에게 주택을 제공하기 위해 공동주택의 건설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아파트는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권적인 건축물이 되었던 것이다.

주택건설촉진법이 적용된 이래 20세대(때에 따라서는 50세대)이상의 건축물을 한꺼번에 짓는 경우 각종의 혜택이 주어지게 되자 개발이익이 가장 많은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건설되었다. 동법이 제정될 당시 국민들의 일반적 주거수준이 너무 형편없는 것이었고, 그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법의 제정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새로운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전제로서,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할 국가의 입장에서는 재정형편상 좁은 장소에 많은 사람이 몰려 살게 하는 방법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주택건설촉진법이 적용되어 대규모로 개발된 아파트들이 지금 서울의 반포, 잠실지구 재건축대상 아파트들이다. 이처럼 주택건설촉진법 초기의 아파트를 보면, 그 당시 법이 의도했던 것은 아파트를 집단적으로 모아 대규모단지를 계획적으로 개발하는 것이었다. 집단적 아파트단지의 계획적 개발은 뒤에 보는 바와 같이 완벽하게 법제화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초기의 정책집행자들이 법제정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계속 이어져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의 건설이 대체로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소규모의 아파트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주택건설촉진법이 추구하던 초반의 원칙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무주택자만이 결성할 수 있는 주택조합제도였다. 그리고 주택조합만이 아파트를 건설하게 함으로써, 아파트의 건설이 무주택자를 위한 것이라는 법의 정신이 엄격하게 관철되었다.
이는 개발이익을 위해 이미 주택을 소유한 자나 토지소유자 또는 건설업자가 주택건설촉진법을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7년 토지소유자에게도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주택건설촉진법 제33조의4), 주택소유자에게도 재건축사업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됨으로서(재건축조합: 동법 제3조 9호 후단) 무주택자를 위한 특별법의 취지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이에 더하여 1980년대 후반으로 들어오면서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계획적 개발이라는 정책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이는 도시계획법상의 아파트지구제도와 주택건설촉진법상의 지구개발기본계획(동법 제20조)제도의 死文化를 통해 달성되었다.
이들 제도는 아파트단지의 계획적 개발을 위해서 종합적·사전적 계획을 의무화하는 것이었지만, 도시계획법상 아파트지구가 지정된 경우에만 지구개발기본계획을 세우도록 하는 허점이 있었다.
자치단체들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아예 아파트지구 자체를 지정하지 않음으로써,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한 事前的 計劃義務에서 벗어나는 편법이 일반화되었다. 이를 통해 종합적 계획없는 아파트건설이 일반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저러한 법개정의 결과, 이제는 토지소유자도 주거지역내 자투리땅을 활용해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게 되었으며, 땅만 확보되면 단독주택 밀집지역에도 아파트가 건설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주거지역내 산책로, 임야, 빈터 등이 모두 아파트건설을 위해 제공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파트들은 도시전체와 관련된 계획(지구개발기본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서 건설되고, 소규모로 개발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단독주택 위주의 주거지역에 3,4동 규모의 고층 아파트가 불쑥 들어서면, 기존의 도로망, 상하수도, 가스공급시설 등 사회기반시설이 일시에 포화상태에 이른다. 또 아파트에서 들여다보이는 단독주택의 마당과 마루는 가족들의 소중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잃게 된다. 만약 주민들이 휴식을 위해 사용하던 공터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경우라면, 도시 전체의 公共空間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들이 언제부터인가 집밖에 나가 앉아 있을 빈터를 찾지 못하는 것도 주택건설촉진법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나는 아파트가 주는 안락함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아파트건설 자체를 반대할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아파트를 건설함에 있어 도시전체의 기능을 고려하는 종합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할뿐이다.
또 주택건설촉진법은 개발이익을 노리는 자들을 위한 법이 아니라 무주택자들을 위한 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이 모두 여러 차례의 개정으로 왜곡된 주택건설촉진법을 초기의 법 정신에 입각해 바로잡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세상은 공평해서 아파트가 마구잡이로 건설되고 개발이익이 누군가에게 넘쳐 들어가면 손해보는 사람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잘 보지 못한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면 누구나 삭발하는 우리 풍토에서, 손해보고 가만히 있는 그런 점잖은 양반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마도 그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 다음 세대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 항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건교부장관님이나 국회의원님들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우리 같은 범부들이야 못 듣는다 해도 누가 탓하리 하고 위안 삼는다.
(2001.3.1 김종보교수의 건축행정법 교실의 칼럼에서)

*김종보 교수님은 잘 모르는 분이십니다. 아직 한번도 뵈온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 하지만 그분이 운영하시는 [김종보 교수의 건축행정법 교실]을 통해서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 지내던 분처럼 느껴지시는 분이시랍니다.
. 행정법을 전공하시고 건축행정법을 강의한다니 새롭게 보이십니다.
. 사실 건축행정법은 불모지나 다름없는데 법학을 전공하신 분이 여기에 관심을 두시다니
. 고맙고, 반갑고, 기쁘답니다. “건축행정법”을 저술하시고, 건축과 도시계획관련법제에 대해
. 많은 글을 쓰시고 계십니다.
. https://chonnam.chonnam.ac.kr/~jb1260/를 들어가시면 새로운 세계를 구경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