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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5개 저밀도 아파트 기본계획의 수립
     
   

1998년10월부터 2000년3월까지
주택기획과 저밀도아파트지구개발기본계획수립팀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양갑 주택국장께서 “5개 저밀도 아파트지구 기본계획수립” 업무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을 때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내 평생에 어디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만져볼 수 있었겠는가? 일 욕심에 건축지도과 관리팀장과 저밀도기본계획수립팀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이 일은 주택기획과 고유업무인데 건축직 공무원이 없어 내가 맡게 된 것이다. 단지설계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일을 건축에 전혀 문외한인 행정직 공무원이 맡을 일이 아니었다.
1998.10부터 2000.3월까지 1년6개월 동안 겸직을 했다. 이 일은 5명의 별동대(정말 별동대였다. 갑자기 팀을 만들다보니 이일을 감당할 직원들을 선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공무원의 인사 생리상 내 마음에 드는 사람, 일 잘하는 사람을 고를 처지도 아니었고, 그 당시 인력 풀제도가 있어서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되지 못했다. 건축직 2명, 토목직 2명, 그리고 타자를 쳐줄 여직원 2명과 필자가 한팀이 되어 출발했다. 그러나 2달도 못되어 건축직 주임급 1명이 다른 구로 전출가는 바람에 5명의 직원이 이일을 감당했는데, 정말 그들은 특공대였다. 모두 생소한 일을 몸 아끼지 않고 따라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들을 별동대라 부른다)가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말이 5만가구이지, 상상을 해 보라. 단순히 기본계획만 수립한다면 그야 어려울 일은 없다. 전문 용역자에게 의뢰하면 될 일이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5만명의 주민들이 이해관계가 걸린 일이고, 이미 각 단지별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다양한 요구, 압력, 애원, 협박 등을 이겨낸다는 것은 여간 강심장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을 설득시키고, 이해하도록 한다는 것은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것보다 몇 십배 더 어려운 일이었다.

기본계획수립에 3개 용역사가, 교통·환경·인구영향평가 3개 용역사등 모두 6개 용역사가 참여하였다. 행정기관의 용역을 수행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시로 요구하는 자료와 대안제시, 건교부나 환경부등 상급기관과의 업무 연락과 중재, 시도 때도 없이 내려지는 연구과제에 대한 해답 등 그들의 수고도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일을 수행하면서 전문가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옹고집! 꽉 막힌 답답함!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도 적지 않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자세야말로 아직 이 사회와 타협하지 않은 몇 안되는 순수한 집단이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 대한 지적과 조언도 감사한다. 그래서 전문가 집단이 아니던가.

5만가구의 재건축을 전제로 한 기본계획의 수립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지대했다. 과연 얼마의 용적이 적정한가? 건립규모와 소형평형의 확보는? 도로,학교,공원등 부족한 공공시설의 확보량과 방법은? 건설경기 활성화와 이에 따른 일시적인 전세문제의 해결방도는? 철거에 따른 콘크리트 폐기물의 처리대책은? 재건축 이후의 교통대란에 대한 대안은? 친환경정책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등등 검토하지 않으면 안될 수많은 가지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는 것은 대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하나하나가 개발에 따른 사업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반되이 나타나 양측의 화살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당시를 되돌아보면 아찔하다.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다. 행정관료들, 서울시와 건교부, 환경부의 관료들과 교통·인구·환경평가기관과 그에 속한 전문가들, 이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심의한 사회전문가 그룹들, 그리고 각 단지별 추진위원들과 주민들, 몇 백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들과 씨름하면서 기본계획이 완성된 것이다. 얼마나 사연이 많았겠는가? 우여곡절은? 그 과정에서 필자는 후회를 한적도 있었다. “내가 왜 자청하여 이런 아수라장에 뛰어들었나” 하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 후회는 않는다. 내 평생에 이런 경험을 다시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자랑하고 싶다. 나중에 5개 저밀도 아파트가 개발되고 나면 나는 내 아이들에게 말할 것이다. “네 아버지가 저 일에 동참했다고” 물론 그 결과에 대해 다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 것이 아니다. 잘못 되는 줄 알면서도 대세가 그 쪽으로 기운다면 그렇게 결정된 일도 있다. 상급자와 의견 충돌도 적지 않았다. 로비스트 역할도 했다. 모든 결과가 합의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만큼 다소의 불만족은 문제가 아니다. 최선은 아니었을지라도 좋은 결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자부한다. 그런면에서 나중에 나는 자랑할 것이다. 이 경험을….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적지 않은 손실을 봤다. 너무 바쁘다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전혀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2개 팀을 맡았기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당시 대만의 지진, 터어키의 지진문제로 우리나라에도 지진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야단이었을 때였으니까 건축지도과 관리팀장으로서 이 일도 게을리 할 수가 없었다. 1999년 국정감사시 국회의원들의 질문 절반이 저밀도와 지진문제였으니까 당시 내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것이다. 그 바람에 매년 수정판을 내던 「건축법·조례해설」을 발간하지 못했다. 그로인하여 독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적지않은 경제적인 손실도 보았다. 오죽했으면 농협대출을 받아 생활해야 했을까.

또 한가지 불만스러운 것은 겸직에 대한 행정의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두 개과의 과장에 대한 나 자신의 처신에 대한 불편함, 두 개팀 직원들에 대한 관리소홀 등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무원은 평가를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개팀의 업적과 2개팀의 업적을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공무원 사회가 그러지 못하다는 점이다. 연공서열에 의한 평가관행이 존재하는 한 대안이 없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을 우대한다해도 연공서열을 뛰어 넘을 수 없다면 앞으로 누구도 열심을 내지 않을 것이다. 바보처럼, 일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일하지 않으면 감사에 걸릴 일이 없고, 무리하지 않으면 민원에 시달릴 필요가 없고, 튀지 않으면 눈에 거스릴 일이 없으니까 말이다.
적당히 평가받을만한 일만 찾아하고, 생색낼만한 일만 찾아 하면, 평가받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