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소규모 건축물-언제까지 버려 둘 것인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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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행정과 건축부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언제까지 건축이 부조리의 머리에 서야 하는가? 공무원만 건축사만 시공자만 건축주만 나무랄 문제는 아니다. 책임을 나누는 것은 무책임하거나 회피적인 발상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어쩌면 문제의 해결을 더디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공무원이 먼저 앞장서서 매를 맞아야 한다. 책임이 그만큼 더 크다는 말이다. 그러니 영향도 더 클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해결은 스스로의 변신과 엄정하고 공정한 법집행에 달려있다. 이 경우 법령의 합리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규제는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대상이지만 불합리한 규제는 합리화 대상이지 결코 완화·폐지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동안 많은 부분을 규제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아예 포기하거나 방치한 경우가 없지 않다. 1980년대 국보위시절에도 1990년 문민정부에서도 현재의 국민의 정부에서도 규제개혁은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근 20여년 동안 규제개혁을 꾸준히 추진해왔지만 앞으로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주요단골로 규제개혁이 등장할 것이다. 규제는 반드시 또 다른 규제를 낳는다. 조직은 규제를 수단으로 점점 비대해진다. 조직이 존재하기 위한 논리를 규제를 통해서 만들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가 『작고 강한 정부』를 만들겠다며 5년 동안 2만명의 공무원을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오히려 4만8천명이 늘어났음이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조직을 줄여도 규제를 완화해도 시간이 지나면 규제는 새로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 하자보증이 안 되는 소규모 건축물 200평 이하의 주택이나 150평 이하인 기타 건축물은 아무나 건축을 할 수 있다. 그 규모를 초과하는 경우 건설산업기본법에 의하여 면허가 있는 건설업자만이 공사를 할 수 있다. 건설업자가 공사하는 건축물의 경우도 그 규모가 적은 경우에는 대부분 면허를 대여한 소위 집장사들에 의해 건축되어지고 있다. 건설업자(일명 종합건설업자)가 공사를 집행할 경우 공사비가 증액되기 때문에 무면허업자가 공사를 맡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면허를 빌리는 비용만큼 건축주가 추가 부담을 해야한다. 그러나 면허대여일 망정 건설업자이름으로 공사를 하는 경우는 사후에 하자보수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규모 이하 건축물은 별도 계약에 명기하지 않는 한 보장받을 수 없다. 하자에 대한 보장을 받을 수 없다면 고스란히 이처럼 제도권으로부터 보장을 받을 수 없는 건축물만 하더라도 전체 허가건수의 절반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규모 건축물의 설계가 건축주로부터 의뢰를 받기보다는 시공자로부터 의뢰 받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이 그런 경우다. 누가 설계를 의뢰하던 설계자가 제대로 설계만 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업무를 수주하는 자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보면 간단하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설계자는 건축주에게 그가 원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게끔 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는 설계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다. 최소한 설계가 완성되기까지는 열번 이상 면담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세대원 모두가 원하는 바를 듣고 그들의 신체구조나 생활 습관을 이해해야 한다. 현장을 확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장래의 변화와 전망을 예측하는 설계가 진정한 설계자가 지녀야할 자세가 아니겠는가? 아무 것도 모르는 건축주의 요구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거나 소위 집장사들의 경제시공을 위한 설계가 횡횡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물론 전부가 다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많은 양식있는 설계자들이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적정 설계를 확인할 방법도 검증할 방법도 없다는 점이다. 건축사 조사·검사·확인대행 건축물이라 하여 건축허가시에 공무원이 그 내용을 검토하지 않고 건축사협회에서도 이를 검토하지 않는다. 설령 검토한다해서 설계의 수준을 가지고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영원한 미지수일 뿐이다. 건축사의 양식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일까? 대규모 건축물의 경우는 나름대로는 충실한 설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건축주나 시공자측에서도 도면을 이해할 정도의 지식이나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설계자가 함부로 소홀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청소년이 유흥업소에 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가 규제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정답은 간단하다. 자유를 허용하는 것보다 규제를 하는 것이 더 이롭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행 소규모 건축물에 대하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치해 두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건축관련법은 기술법이면서도 절차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여기서 불필요한 절차는 과감히 해제하는 것이 옳다. 다만 규제가 필요하다면 합리성있게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여기서 무엇을 해제하고 무엇을 조정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 동안 건축법에서는 많은 부분의 행정절차를 완화해 왔다. 건축허가시 공무원으로 하여금 현장을 조사케 하던 것을 설계건축사로 하여금 현장조사·검사·확인케 하여 이를 대신케 하였으며, 건축허가도 짧게는 1일에서 3일 이내로 처리토록 하였으며, 소방 등 관련부서를 한자리에 모아 협의기간을 최대한 단축되도록 하였다. 공사진행과정에서도 최소한 2-3회 이상 중간검사를 한다며 현장을 확인하는 것도 공사감리건축사로 하여금 감리완료보고서를 건축주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 하였으며, 준공검사제도도 폐지하고 공사감리완료보고서에 의하여 바로 사용승인서를 교부하는 등 어찌보면 행정을 아예 포기하다시피 할 정도로 개선하였다. 거기다 건축허가 제도도 건축사의 확인제도로 바꾸고 공사감리중간보고 제도도 사용승인시 일괄 제출케 하겠다는 개정안이 발표된 바가 있을 정도이다. 과연 이러한 완화된 제도가 건축주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가? 부조리 하나를 막겠다고 행정이 모든 걸 방관할 때 과연 건축물은 어떻게 될 것이며, 건축주에게는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아무리 건축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선한 목적일지라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면 규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편한게 좋을지도 모른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해결해도 된다면 말이다.
건축주는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가 있다. 1978년도 종로구 무악동 재개발사업과정에서 겪었던 일이다. 일부 주민들은 20평형 연립주택에 1개의 거실과 4개의 방을 고집하였다. 방 한 두칸을 전세내기 위해서란다. 그 당시는 설계에서 시공까지 행정기관에서 총괄할 때였음으로 필자는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1개의 거실과 2개의 침실안을 제시하고 시행하였다. 일부주민들은 필자를 죽인다고 칼을 들고 다니기도 하였었다. 입주할 당시 죽인다고 그토록 쫓아다니던 입주자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었다. 당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하면서. 어떤 집이 좋은 집인지 모르는 건축주에게 좋은 집이 어떤 것이란 걸 이해시키는 일은 설계자의 몫이다. 이는 법과 제도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설계자의 윤리에만 맡겨 둘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임시공으로 좋은 품질의 건축물을 건축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공자와 공사감리자가 해야할 일들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해두어야 한다. 소규모 건설업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봄직도 하다. 제도권 밖의 집장사들을 제도권 안에 두어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품질 좋은 건축물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완공된 건축물의 하자대책 등 특단의 품질보증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최근 일본에서는 건축물의 성능보증제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폐지한 중간검사제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소규모 건설업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신중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1993년도 건설업법에서 소규모 건설업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여 건축법 개정시 입법예고한 바 있었지만 이를 건설업법으로 넘겨준 적이 있었다. 그 후 건설업법에서도 입법예고까지 하였었지만 여러 가지 사유로 반영되지 못했다.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에서는 건설업자가 시공한 경우에만 의무적으로 하자보수제를 인정하고 있다. 규모 이하의 건축물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보증보험제나 성능인정제 등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이 연구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의무를 부과하고 규제를 해야 할 텐데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는 마당에 과연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시장경제에 맡기는 것이 편할지 모른다. 당사자간에 해결되어야 할 일을 행정에서 염려하는 것은 과잉행정이라고 지적할 것이기 때문이다.
욕을 먹어도 할말은 해야 하는 것 아니가? 자율이라는 이름을 빌어 국민이 보호받아야 할 권리마저 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청소년이 음란영화관에 출입하는 것을 막는 것이 규제인가? 보호인가? 「모난 돌이 정(釘) 맞는다」는 속담이 있다. 문제를 정면으로 부딪히기보다는 그 순간만 피하고 보자는 풍조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빗된 속담이다. 물에 빠져도, 괴한에 협박을 당해도 그냥 모른 체 지나치는 사람들이 만연한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사회보다 작은 목소리도 귀담아 듣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인 것이다. 태풍이 몰아칠 때 소수의견을 말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 목소리를 들어준다는 것도 또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무릇 제도를 개선하고 개혁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개선하고 개혁해야 하는 것인지 묻고싶다.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큰 손해를 입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빈대 한마리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실적을 남기기 위해,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개혁하고 개선하는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 규제해야할 일이라면 당연히 규제하는 것이 맞고 해제해야 할 일이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해제해야 할 것이다. (PLUS 9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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