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건축과 그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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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다. 화구를 구하기조차 버거운 형편이었다. 돌아가신 둘째 형님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책을 팔아서(그 당시는 헌책도 귀중한 것이 면 값이 꽤 나갔다) 물감이나 붓을 사 주었다. 어줍짢은 실력만 믿고 예술고등학교를 간다고 했다간 혼이 났다. 집안형편도 생각지 않고, 더구나 그 당시 환쟁이는 굶어죽는 시절이었으니까 철없는 선 택은 허망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결국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정형편을 고려하고, 그림에 대한 동경 을 어느 정도나마 이룰 수 있다는 5년제 고등전문학교 건축과를 나의 의지 와 관계없이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전적으로 학비를 책임질 맏형의 결정이었다. 5년의 학교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나 건축에서 예술을 발견하기란 쉽 지가 않았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구조계산, 시공, 설비 등등, 그나마 제도 와 설계시간을 통해서 나의 손재주가 빛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 아 닐 수 없었다. 그림에 대한 미련이 스물스물 살아 움직였지만 나의 뜻을 이룰 방안이 전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학비는 커녕 용돈한번 대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 었다. 하여간 전문학교 5년은 건축의 기초지식을 쌓기에는 부족한 시간은 아 니었다. 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또 한번의 좌절을 맞게 된다. 대학교에 편입을 해야하는데 그 당시 100만원 정도의 입학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마련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편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5년의 학비를 대주신 형님께서 도 더 이상 내게 학비를 대 줄 형편이 아니었다. 30개월을 군 생활을 마치고 마땅한 직업이 없어 집에 놀고 있을 때 공무원 이라도(?) 해 볼 요량으로 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전혀 다른 내용의 공부는 내게 쉽지 않았다. 우연찮게 서울시 건축직 9급공무원 모집 요강을 보게 되 고, 학원 등록 보름만에 응시하여 덜컥 합격을 하게 된다. 그게 1977년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건축직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데 나는 20년을 넘게 건축분야에서 몸담고 있다. 3년만에 다른 직업을 택한다는 것이 시작 당시의 내 계획이었다. 그러 나 배운 도둑 어쩔 도리가 없는가 보다. 적성에 가장 잘 맞는 모양인가보다. 지금껏 이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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