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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들 하나 갖고 싶지 않소?
     
   


누가 자녀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면 나는 ‘첫째는 딸이고 둘째는 계집아이’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첫 딸이라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살림밑천 장만해서 좋겠다고 하더니 둘 째 딸에 대해서는 그저 순산했으니 축하한다는 말로 위로(?)를 하는 게 아닌 가. 사실 나는 딸 아들 구별을 않는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떻다는 생 각이 전혀 없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위로(?)를 한답시고 하는 말들을 하도 자주 들어서 혹 시나 내가 아들을 선호하는 게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진 적은 있었지만 결코 두 딸만을 둔 것에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 한 때 어머니께서는 서운해 하셨다. 두 번째 아이를 낳고 아내가 바로 불임 수술을 하겠다고 하였더니 그것만은 말리셨다.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일이니 까 다음 기회엔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허락을 아니하셨다. 두 번째가 세 살 이 될 때에야 불임수술을 허락하셨다. 그것도 며느리가 하는 조건으로 말이 다.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께서 그 이후 돌아가실 때까 지 아들에 대해 한 마디도 하시지 않으셨다. 장모님은 가끔 아이들 듣지 않게 둘 중에 하나는 아들이었으면 하는 아쉬움 을 표현하시긴 하지만 그것도 사위에 대한 장모로서의 미안함에 대한 다른 표현 일 뿐이다. 아내 탓이 아니라 내 탓인데도 말이다.

나는 세 번째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아내와 함께 결정을 하였다. 만약 아들이 필요로 했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졌을 것이다. 그러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 두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이었다. 아들이던 딸이던 상관없이 세 번째 아이는 갖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 아이를 출산 후 바로 중절수술을 하지 못 한 것은 나의 어머니에 대한 작은 배려였을 뿐 결코 아들에 대한 미련이 있 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두 딸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세 번째 아이를 갖지 않은 걸 얼마나 다행으로 느끼는지 모른다.

대학 2학년에 다니는 큰 아이가 어느 날 자신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간호학을 전공해서 헌신하겠 다고 하나님께 맹세를 했다는 것이었다. 필요하다면 신학도 전공하겠다고 했 다. 자기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확신이 서지 않 았을 것이라고 했다.

딸아이는 시집을 가기 위해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던 아이였다. 그러던 놈이 어느덧 성장하여 든든한 바위처럼 다가왔다. 부모 가 된 이후 가장 큰 기쁨을 맛 본 그 순간은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오직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막내는 귀엽기 그지없는 놈이다.

아직도 아빠 얼굴에 뽀뽀하도록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끔 심통을 부려서 탈이긴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운 걸 어쩌나! 공부를 잘 못한다는 흠이 있긴 하지만 큰 흠이 될 수는 없다. 지 난해 대학 시험에 떨어져 재수를 하고 있는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도 어느 날 우뚝 자라서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리고 부모 앞에서 당당히 자신의 미래를 밝힐 날이 있을 것이다. 나의 당당 한 딸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선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