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세 번의 만남-소중한 사람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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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 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법구경의 한귀절이다. 그렇다. 사람 잘 만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요 행복한 사람이다. 반대로 사람 잘못 만나 패가망신한 사람 한둘이 아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서, 친구 를 잘못 만나서 자식을 잘못 만나서 괴롬과 고통 속에 지내는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행운아임을 확인하게 된다. 나의 첫 만남은 부모와의 만남이다. 이는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만남이 다. 가난한 부모를 만날 수도, 유명인을 만날 수도, 못배운 자를 부모로 만날 수 있지만 내가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불 공평하고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시작은 타의에 의했다하더라도 삶의 과 정은 순전히 나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 달라진다는 점이다. 아무리 부자를 부 모로 두었다하더라도 유지관리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하루아침에 거 지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부모를 둔 자녀의 성 공담은 심심찮게 듣는다.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을 기다리는 기회를 어떻게 포 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좌우가 갈라진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나의 부모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삶 속에서도 여덟 남매를 낳아 기르신 그 지혜를 내가 배우지 않았 던들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배고픔을 통해서 인생의 깊이를 알게 하였고, 가난 속에서 비굴하지 않고, 겸손을 배우게 하였고, 오기를 익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얼마나 가난하였던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운동화 한 켜레 신지 못했 고, 설날 추석에도 새 옷 한 벌 입은 기억이 없었다. 지금 다 자란 나의 딸들에게 ‘국민학교 4학년 때 부자집 여학생의 가죽 가 방을 집까지 들어다 준’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는 좋은 친구와의 만남이다. 내가 아는 천성이 매우 착한 아이가 한 명 있다. 심성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자신의 치부도 숨김없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순진하지 않 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그에게 나쁜 친구들이 있음으로 그의 인생은 나 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고 패거리를 지어 폭행에 가담하고 심 지어는 본드를 흡입하기도 한다. 스스로 잘못이란 걸 알면서도 막상 그 순간 만 되면 모든 것을 말끔히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절제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 그에게는 치명적인 흠이다. 매를 들기도 하고 타일러 보기도 하지만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다. 정신병원 에 입원을 시키기도 하고, 시골의 어떤 대안 학교에 입학시켜보기도 하였지 만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다. 만약 그에게 좋은 친구가 있었더랬으면 그는 봉사활동에 전념할 정도로 남 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많은 친구를 사귀는 편은 아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친구들이 오늘의 나를 만드는 데 엄청남 영향력을 행사했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정말 고맙고 고마 운 친구들이다. 어려울 때 위로자가 되어주고, 힘들 때 도와주기도 하였다. 어떤 결정을 해 야 할 때에는 조언자로서의 역할도 친구들이 해 주었기 때문에 바른 판단으 로 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안동에서 수학선생을 하고 있 는 배용환 선생이 내게 끼친 영향이 가장 큰 친구이다. 그 외에도 몇몇의 친구들이 지금도 나의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사람은 나의 아내와 나의 딸, 가족이다. 결혼은 인생의 전부를 투자하는 일이다. 어떤 아내와 어떤 남편이 결합하는가에 따라 운명 이 달라진다. 나의 아내는 좋은 학벌도 좋은 가문도 좋은 다른 조건을 갖춘 사람은 아니 다. 보통 사람이다. 지금의 내 아내를 선택할 당시 나는 다른 한 사람을 결 혼 상대자로 점찍고 있었다. 물론 그 상대자에게 그런 말을 한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을 두고 선택을 해야할 순간에 며칠을 생각했다. 지금의 아내를 선택 하기로 했다. 선택에서 제외된 그녀는 같은 고향 동네의 동기동창으로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사람이었다. 똑똑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 맑은 물 줄기 같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아내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은 착한 심성 때문이 었다. 지금까지 남편이 가장 위대하다고 믿고 있는 아내가 그 선택을 증명하는 것 이다. 나와 자식을 위한 헌신, 21세기에 18세기의 아내, 그가 없었다면 매일 감사함으로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 가정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나를 팔불출 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선택중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음을 자랑스 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아내는 믿음을 주었다. 남편이 하는 일을 이해하였고 밖에서 무슨 일을 하더 라도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남편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기를 게을 리하지 않았으며, 자녀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 또한 여느 어머니와 다르게 굳 건했다. 보통 말하는 치마바람이나 억척과는 전혀 다른 믿음 하나로 가정을 지켜 왔었다. 100일기도 40일기도 등 끊임없이 남편과 자녀를 위해 자신의 육신을 가혹하게 다루었다. 그런 아내를 나의 어머님은 싫어하셨다. 어머님이 보시기에 가장 촉망받는 아들(?)의 반려자로 부족하게 여기신 모양이었다. 어느 부모나 다 자식에 대 한 착각을 하시게 마련이지만 어머님의 착각은 유독 더 심하셨다. 아내는 그 런 냉대를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말년에는 불편하신 몸을 그토록 싫어하시 던 며느리에게 의탁하였다. 육신을 전혀 쓰실 수 없는 자신을 며느리에게 맡 기면서 어머니는 아내를 며느리로 받아 주셨다. 미운정 고운정 만들면서 아 내는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했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한 아내의 수고를 잊지 못한다. 내가 그렇게 말했다. “나중에 장모님이 어머니의 모습이 되었을 때 우리가 모시자고” 그런데 나는 그 약속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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