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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나의 종교편력 – 하나님과의 만남
     
   


나의 고향은 유달리 불교세가 강한 지역이다.

부모님 역시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를 따라 절(寺刹)에 다니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셋째 형수님의 아버지께서 대처승으로 계셨다. 산 속의 절은 내게 무서움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나한전의 부릅뜬 모습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인자한 부처의 눈매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근처 교회에 다녔다. 기억 나지 않지만 어떤 소녀를 좋아해서 그 소녀 따라 교회에 다니 것 같다. 신앙촌 제품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는데 지금 알고 보니 박태선 장로의 전도관이었던 것 같았다.

생수를 마시고 신앙촌 캐러멜 먹는 맛에, 크리스마스 잔치에 혹해서 몇 달을 다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어떤 믿음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사병으로 있을 땐 부대안의 절에 다녔다. 법구경이 마음에 와 다가왔기 때문 인지 모른다. 아님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다니던 절에 대한 향수가 무의식 세계에서 그렇게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수계(受戒)를 받아 무애(無 涯)라는 법명을 받았을 정도이니까 땡땡이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천주교에 다녔다. 그러나 지루한 교리교육이 마음에 차지 않아 얼마되지 않아 그만두게 된다. 아마 자극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까운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 성당보다는 훨씬 재미로웠다. 설교말씀이 천주교보다는 다이내믹하였다. 박수와 찬송도 재미롭고, 사람들의 친절에 마음이 끌렸다. 그러나 그도 적당히 시간이 나면 주일이나 갈 정도였지 깊이는 전혀 없었다.

기도시간이 왜 그렇게 괴로운지, 과잉친절이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등 이런 저런 핑계가 교회를 자주 찾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정작 나를 교회에 이끈 사람은 바로 위의 형수님이었다.

한 때 한 집에서 함께 기거한 적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주일이면 교회에 온가족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천호동 성결교회 안창건 목사님 주례로 세례를 받았다. 그래도 내겐 하나님이 선뜻 와 닫지가 않았다. 남들이 장에 가니까 나도 장에 간다고, 우리는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교회 또한 이사를 갈 때마다 바꿀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장로교회를 다녔는데 장로교회가 다른 교파보다도 보수적이고 엄숙한 편이어서 아내와 나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갈등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락성결교회(나중에 성민성결교회로 개명)에 나가면서부터 정작 하나님과의 교제가 시작되었다. 아내와 큰 딸아이는 나보다 더 열정적이다. 그기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무덤덤이다. 맹물에 맹물 탄 그런 모습이 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과의 열정적인 만남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

주님! 날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부족하고 나약한 이 모습 주님의 일위하여 사용될 수 있도록 다듬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