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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일조권이 사람보다 먼저인가?
     
   


서울 서초구 D동에서 일조권 문제로 시비가 붙어 사람을 살해한 사건이 생겼다. 손바닥만한 일조권을 찾으려다 햇빛 한 점 없는 감옥 생활을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햇빛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 최대의 선물이다. 이를 쬐일 수 있는 권리, 즉 햇빛으로 부터의 방해물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를 일조권이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기후상 일조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적도 부근에서의 일조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자연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리인 일조권은 법률로서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건축법에서 최초로 도입하였다. 처음에는 정남과 정북 양쪽으로 일조 거리를 떨어지도록 하였다. 그러나 토지 면적이 비교적 작은 입지 여건을 고려할 때 남북 양측을 띄우는 것이 무리임으로 1978년도부터 정북 방향으로만 떨어지도록 개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법은 최소 기준밖에 정할 수 없다.
건축 계획상 적정한 일조시간은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약 4시간이 필요로 한다. 지역에 따라 태양 고도가 다르기 때문에 떨어져야 할 거리도 지역마다 다르다. 서울의 경우 건물 높이의 1.8배 이상을 띄워야 하는 반면 전주에서는 1.68배 이상을, 부산에서는 1.64배 이상 떨어져야 4시간 일조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건축법에서는 0.8배 이상을 띄우도록 정하고 있어 겨우 2시간의 일조시간을 확보하기에도 빠듯하다.

주택 200만호 건립을 목표로 당초 용적률 300%를 400%로 완화하고, 떨어지는 기준도 대폭 완화하여 일조 확보 시간을 2시간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근본적으로 일조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실 10-20cm가 일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행정기관이 적법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중대한 위법행위가 되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건축주는 죄인이 되고 만다. 법은 상황에 따라 적정하게 변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뿐이다.

일조에 대한 진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S동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산 비탈에 주거지로 형성된 동네다. 이곳은 지역 여건상 공사 중 균열 등 안전사고에 대한 진정이 많은 편이며 그 외의 대부분이 일조에 관계된 내용들이다.

필자가 발령 받기 전의 진정 사건 이였다.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관계로 남쪽의 건축물은 평지에 건축하는 경우보다 불리하게 더 떨어져야 한다. 보통은 건축물 높이의 1/2이상 떨어져야 하지만 이 경우는 대지 고저차의 1/2이 건축물의 높이에 합산하여 합산된 높이의 1/2을 띄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하층을 허가보다 노출하여 건축함으로 인하여 뒷집과 분쟁이 생기게 된 것이다. 실측한 결과 1m이상을 노출하였기 때문에 결국엔 50cm가 부족하게 떨어진 것 이였다. 북쪽에 위치한 진정인의 입장에선 절벽같이 들어선 건축물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던 차에 위법 사항까지 알게 되었으니 필사적 이였다.
예측대로 시정 지시와 고발로 이어졌지만 시정은 말 처럼 쉽지가 않았다.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단전 단수토록 한전과 수도 사업소에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단전 단수도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건축주와 진정인의 관계는 악화되어 돌아올 수 없는 데 까지 가버렸다.
마침내 건축주도 1년 전에 준공된 진정인의 건축물에 위법이 있다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하게 되고 결국엔 진정인도 건축주와 마찬가지로 고발과 단전 단수, 이행강제금의 부과 등 행정 제재를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 건축 과장으로 갓 부임한 본인을 직무유기 혐으로 고발하였다. 경찰서에 출두하도록 통지를 받은 필자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무혐의 처리를 받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심리적인 타격은 몹시 컸었다. 합의도 어렵고 시정도 지지부진하여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고 말았는데 이러한 유형은 어느 행정기관 할 것 없이 몇 건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일조권 시비로 이웃을 살해할 정도라면 한심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손바닥만한 일조를 확보하기 보다는 따뜻한 이웃 사람을 더 사귀는 게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햇볕을 값으로 환산하면 과연 얼마가 될까?
법원이 일조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판결을 위해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최근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경제신문 97.7.1) 순수한 일조량과 일조시간 부족으로 발생하는 가치는 적게는 가구 당 1백 만원에서 많게는 1천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23평형과 32평형 6개 동의 단지에서 조사한 이 결과는 사생활 침해나 층별 차이를 모두 배제한 채 순수한 일조량과 시간만을 따져 일조권 가치를 산출했다고 설명했다.

조사대상 아파트 중 평균 시세가 1억2천만원인 32평형의 경우 일조권 침해가 큰 저층 아파트는 햇볕이 잘 드는 층의 아파트보다 총 시세의 8.33%에 달하는 1천만원까지 가격이 낮았다.
같은 평형 가운데 고층 아파트도 일조권 침해가 없는 정상적인 아파트에 비해 적어도 4백만원 정도 가격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8천5백만원을 호가하는 23평형은 햇볕이 잘 드는 아파트에 비해 저층의 경우 최대 6백만원까지, 고층은 최소 1백만원 가량 값이 덜 나갔다.

햇볕 값 1천만원,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찾기 위해 서슴지 않고 진정을 한다던가 살인까지도 해야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