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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창문의 폐쇄를 요구할 수 있는가?
     
   


눈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사람이 악할 수가 없고 사악한 눈의 소유자가 결코 선한 사람일리는 없다. 눈은 바로 그 사람을 표현하는 창문이다.

건축물의 창문도 사람의 눈과 같아서 아름다운 창문은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고 불합리한 창문은 건축물을 엉망으로 만든다.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창문을 없애달라는 진정을 가끔 접한다. 현장 여건상 조정이 가능할 때에는 건축주의 양해를 받아 진정을 해결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이 불가능한 상태다.
건축설계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주어진 대지 여건하에서는 당초의 설계 의도를 변경하지 않는 상태로의 변경이 용이하지가 않다. 더구나 진정이 제기되는 시점은 건축물의 골격이 형성될 때쯤이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주택가에서는 북쪽 창문을 설치하여 뒷집의 거실이 들여 다 보인다는 진정이 많다. 남향받이를 선호하는 주택 구조상 북쪽 창문의 설치는 여간 골치꺼리가 아니다.
창문의 크기를 축소하거나 창문의 위치를 조정하여 마주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창을 눈 높이 이상으로 높게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진정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달리 방법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민법과 건축법에선 2m이내에 개구부를 설치하여 인접지 내부가 들여 다 보일 때에는 이를 가릴 수 있는 시설, 즉 차면 시설을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창문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이지 않게끔 가릴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도록 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진정을 하면 창을 없앨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건축법에서 창을 설치하지 않으면 안될 최소 기준을 정하고 있다.
거주,집무,작업,오락,기타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거실에서는 그 거실 면적의 1/10이상을 채광을 위한 창을 설치하여야 하며, 환기를 위해서는 그 거실 면적의 1/20이상의 창을 설치해야만 한다.
이 때 채광을 위한 창을 설치한 경우 따로 이 환기창을 설치할 필요는 없다.
이 때 적당한 조도(빛의 밝기를 조도라 하는데 Lux로 표시함)가 나오게끔 별도의 조명 시설을 설치하고 기계식 환기 시설을 설치한 경우는 창을 설치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주택 등 소규모 건축물은 별도의 기계식 환기 설비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당 거실에서 확보해야 할 조도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일반 가정집은 최소 150룩스(lux)이상이 되도록 전등을 설치해야 한다. 일반 사무실은 300룩스 이상, 집회장은 150룩스 이상,공연장과 관람장은 최소 70룩스 이상이 되도록 조명 시설을 하여야 한다.
룩스(lux)란 빛의 밝기를 말하는데 한여름 대낮은 약 10만 룩스 이상이지만 보름달 밤은 약 0.2룩스가 되며, 보통의 가로등 밝기는 약 20룩스 쯤 된다.
또한 맑은 날 일반 주택의 안방의 조도는 약 200에서 500룩스쯤 된다.

법규는 최소 기준만 정할 뿐이지 적정한지의 여부는 설계자의 감각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눈이 아주 작은 사람을 와이셔츠 단추 구멍이라 하고 큰눈은 황소 눈이라 하듯이 건축물의 창문도 걸맞게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크기며 디자인이며 재료나 색상 등 건축물과의 어울림을 고려해야 하는데 건축사들이 가장 고심하는 분야이다.

S씨는 미국에서 만화영화를 공부하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사람이다.
그는 사무실을 건축하여 한국에 미국에 버금가는 월트디즈니 같은 만화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6층 규모인 그의 사무실이 마침 아파트 단지 바로 맞은편 6m도로 건너편에 위치하게 되었다. 건축물이 거의 완공 단계에 아파트 입주민들이 그 창문의 반사 유리로 하여금 사생활을 침해 받음으로 폐쇄해 달라는 집단 진정을 받게 되었다.
버스를 대절하여 50여명이 몰려왔다.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할 수가 없었다. 대표자를 선정하지 않으면 면담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들 중 5명을 대표자로 정하고 나머지는 돌려 보냈다. 건축주와 건축사를 진정인 대표들과 함께 자리하게 하여 협상을 시작했다.
아파트에서 30m이상이 떨어져 있는데 창문을 폐쇄하라는 주민들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고 건축주가 말했다.

미국에서 30년 이상 살다가 온 그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였다.
주민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위 아래 아파트 내부가 반사 유리에 비춰 개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준공을 몇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라 외국과의 계약 등 여러 가지의 차질이 빚어지게 되었다. 주민들도 그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타협안을 제시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아파트 주민들과 건축주간의 협상은 지리하게 끌었다. 우선은 대화를 회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언제든지 필요하면 만날 수 있도록 약속을 했다. 구청에서 만나고 건축 현장에서 만나고 밤에도 만났다. 밤 12시가 넘도록 머리를 맞대고 협상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건물 전면 창을 완전히 폐쇄하라고 요구하다가 아파트 100가구의 커튼과 발코니 새시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하였다.

건축주는 일을 쉽게 해결할 요량으로 커튼 설치비용 정도는 부담할 용의가 있다고 했으나 필자는 이를 완강하게 반대했다.
금품으로 무마한 진정이 많았지만 이 경우는 정도를 넘는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많은 진 정인들이 진정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보다는 금품으로 해결되기를 원한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행정이 그들의 욕심을 만족시켜주는 역할을 할 수는 없는 일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창의 외부에 썬팅을 설치하는 것으로 타결 지웠다.

그 건축물은 지금도 안에서 불을 켜지 않으면 지내기 불편할 정도이다.
반가운 것은 그래도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분야에 선구자 역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