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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주택가의 고층 아파트 – 제한할 수 있나?
     
   


기존 주택가의 오래된 연립주택을 허물고 고층 아파트로의 건설이 활발하다. 과연 저층 주택가에서 무작정 고층 아파트의 건축이 가능한 것인가? 고층 아파트의 건립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당장 주차 난을 초래하고 좁은 골목길은 개구쟁이들에게 점령 당하고 만다. 소음, 청소, 상하수도 등 불편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여름 철이면 문도 열어둘 수 없게 된다. 위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 보기 때문이다. 이 경우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주택을 마련하는 일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주택 앞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버스를 2대 대절하여 100여명이 몰려왔다. 누가 저층 주택가에서 15층이나 되는 아파트를 허가 해주었느냐고 폭행할 듯이 거칠게 항의를 했다. 법규를 펼쳐 놓고 설명해도 아예 들으려 하지 않았다. 무조건 허가를 취소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당장 재산상 입는 피해가 우선 더 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건축주가 마침 건설업체임으로 주민들과 협상을 하도록 유도했다.
필요하면 건축물의 향을 바꿀 수는 있다는 양보 안을 제시했지만 그도 그들에겐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아파트만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건축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주장만 거듭할 뿐이었다.

일단 대화를 다음날 다시 하기로 하고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그렇게 해놓고 건축주는 다음날 무리하게 공사를 감행한 것이었다. 주민들은 벌떼 같이 들고 일어 났다. 일부는 구청을 찾아오고 일부는 시청으로 몰려갔다. 약속이 틀리다는 것이다.
구청과 업자가 결탁하여 주민들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다른 주민들은 현장에서 계획적으로 공사를 방해하기로 하였다.
골목길 중간 중간에 차량을 주차 시켜 트럭이나 레미콘 차량의 통행이 불가능 하게 하였으며, 공사장 입구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주민들이 번갈아 자리를 차지하며 농성을 하였다. 건축주도 이에 질세라 가만 있지를 않았다.
진정인 대표 5명에 대하여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었다. 진정인 대표 5명은 여러 차례 경찰에 출두하고 법원에 출두하는 등의 괴로움을 겪게 되자 진정인에서 빠져 버리고 말았다. 다른 주민들도 그런 두려움 때문에 하나씩 흩어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도 협상은 계속 되었다. 물론 건축주가 우위의 위치에서 협상에 임하는 것이었다.
최종 안은 15층 아파트를 12층으로 조정하고 아파트 향을 건축주가 타협안으로 제시한 대 로 바꾸어주기로 하였다. 또 주민들을 상대로 한 가처분 신청도 취하하기로 약속 하였다.

행정 행위에는 재량 행위(裁量行爲)가 있고 기속 행위(羈束行爲)가 있다.
자유재량 행위라 함은 행정기관이 판단해서 해줄 수도 있고 해주지 않을 수도 있는 행정 행위를 말하는데 해주지 않는다고 하여 소송이나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
반면에 기속 행위는 법률에 근거하여 신청할 경우 적법 여부를 검토하여 적법한 경우는 반드시 처리해 주어야 하는 행위를 말한다.
출생신고나 사망 신고서가 접수되면 행정기관은 반드시 처리해 주어야만 하는 것을 기속 행위라 한다. 건축허가도 이와 마찬가지로 건축법에서 정하는 기준에 적법하면 허가를 해주어야 하는 기속 행위에 속한다.
허가신청서류의 이상 유무를 검토하고 허가 신청 도서의 적법 여부를 따져 위법이 없는 한 건축허가를 해주어야만 한다. 건축허가를 하면 반드시 집단 진정이 들어올 것이 예상 되지만 허가를 해주지 않을 수 없다.
이웃의 진정이 있다거나 행정기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건축허가를 거부하거나 반려할 경우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어 번번히 패하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허가 거부나 취소로 인하여 입은 손해배상에 대한 청구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기 때문에 함부로 반려나 허가 거부를 할 수가 없다. 진정인들은 행정기관이 허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법 앞에선 아무 힘도 없다. 다만 법을 위반했을 때에만 막강한 힘을 발휘할 뿐이다.
만약 담당 공무원에게 상황판단을 하여 건축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할 권한을 준다면 건축허가로 인한 진정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결국 피해를 입는 측은 국민들일 것이다. 건축주의 입장에선 예측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예산 조달 방법을 강구하고 토지를 매입하는 등의 준비 단계를 거쳐 시간과 자금이 투자된 후에 건축허가를 신청하는데 허가 담당자의 판단에 허가를 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는 엄청난 손해를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는가?
진정인이 언제든지 건축주의 위치에 설 수 있을 텐데 그 때 담당 공무원이 재량권을 마음대로 휘두를 때 어디에서 하소연할 수 있겠는가?
모든 행정은 예측 가능해야 하며 이는 법으로 엄격히 제한 되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의 재량을 가급적 축소하여 국민 모두가 법에 의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유형의 진정이 너무나도 많아 1996년 1월부터 저층 주택가에 과도한 높이의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규가 개정되었다.
건축법 시행령 제8조 제6항 규정에 의하면 ‘단독주택 등 3층 이하의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서 건축하고자 하는 건축물의 높이가 당해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당해 건축물의 높이에 해당하는 거리에 있는 지역 안의 건축물 평균 높이의 5배를 초과하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건축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건축허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도록 신설되었다.
만약 15층 건축물을 건축한다면 건축할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15층만큼 떨어진 범위 안의 모든 건축물의 평균 높이를 산정하여 그 높이가 2.5층이 된다고 가정할 때 2.5층 * 5배 = 12.5층이 되어 15층의 건축물은 건축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경우도 건축 위원회의 심의를 통해서 그 타당성 여부를 결정해서 허가를 거부할 수 있는 것이지 구청장이 무조건 허가를 거부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