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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서울, 보행자도시를 꿈꾸고 있는가.
1999년 서울, 마침내 거리의 르네상스가 오고 있는가.
다소 무모하지 않을까싶을 정도로 서울시는 ‘걷고싶은 도시만들기사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늘 무심하게 지나쳐온 거리가 새로운 경제적 가치, 사회문화적 힘을 가진 신천지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봐도 좋을까.
처음에는 부분적이던 ‘보행환경 개선사업’이 삶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도시정비사업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되는 시대를 맞고 있다. 전술적 중요성에서 전략적 중요성으로 격상되었다고 평가된다.
되돌아 보면, 적지않은 시간이 흘렀다.
95년 서울시 교통특별기획단에서는 자동차중심의 교통체계에서 사람중심의 교통체계로 가야 한다는 엔티테제성 구호를 ‘차없는 거리 시범사업’으로 수용했다.
96년에는 시민단체(도시연대)의 보행조례제정운동에 때맞추어 서울을 ‘걷기 편한 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97년 제정된 보행조례에 따라 98년에는 보행환경 개선 10대 사업을 담은 보행환경 기본계획이 나왔다.
서울시 환경관리실은 발빠르게 덕수궁길을 보행자중심의 녹화거리로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이전에 비해 더욱 다양하면서도 전면적으로 바뀌고 있다.
종로 2~3가 걷고싶은 거리만들기사업을 비롯해서 8개 역사문화탐방로 조성, 보행시설 확충과 차없는 거리 시행, 산이 보이는 조망가로 정비 등 총 3개분야 40개 사업에 이른다.
예산만도 1,122억원이 잡혀있다.
급기야는 급류를 타면서 600년 고도인 사대문안 도심부에서 역사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활력을 살리겠다는 도심 성장관리(억제)정책으로 모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특색있는 장소성과 매력이 넘치는 ‘걷고싶은 서울’이 머지않아 보인다. 늘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상의 장소들이 내것이 되어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좋아지게 될 것이다.
삶의 풍경이 거리에서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도시, 낯선 이방인들까지 하나로 엮어내어 자유로와진 도시, 1999년 서울은 진정 보행자도시를 꿈꾸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그 꿈들이 만들어내는 현실은 일그러져 있다. 돈들여 거리를 새롭게 단장하고 나면 모든 게 끝난다. 아무도 거리를 돌보지 않는다. 겉치레가 되고 만다. 같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해봐도 안되더라는 자포자기가 설득력을 가진다. 냉소보다 무서운 적은 없다.
시민들은 꿈과 현실의 차이를 반복체험해왔기에 냉소적이다. 원래 그 꿈이 자기 것도 아니었던 만큼 더욱 그렇다. 성공과 좌절에 대한 집단적 체험과 책임의식을 가질 수 없는 구경꾼이었기 때문이다.
▷ 너희가 보행자도시를 가질 자격이 있느냐
시대가 달라졌다. 시민들이 주민들이 도시와 지역사회에 주인이 된 지방자치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삶의 질, 환경을 생각하는 정비로 목표는 바뀌었지만 행정도 시민도 달라진 게 별반 없다. 무늬만 바뀌었다랄까.
주인이면서 주인노릇 못하는 시민, 달라진 목표를 무늬가 바뀐 걸로만 이해하는 행정이 뒤엉켜 ‘걷고싶은 보행자도시 서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류의 평가는 현상에 대한 단순묘사에 불과하다. 현상은 동굴속에 비치는 그림자처럼 실체를 왜곡하여 이미지화, 단순화한다. 문제의 뿌리는 사업을 만들어가는 행정에 있다. 아직도 행정의 눈에는 시민, 주민들이 언제나 이해관계에만 얽매이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도시와 거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아마츄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익을 대변하는 행정이 전문가들의 기술에 의지하여 ‘걷고싶은 거리’를 만들어주면 된다. 그렇게 만들어준 거리이기 때문에 그곳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타자의 거리가 된다.
낯선 타자의 거리를 한 번 가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자랑하는 종묘 담자락의 순랏길 입구는 음식쓰레기로 더렵혀져 있다. 스테인레스로 꾸며진 건물 파사드는 길의 이미지를 혼란스럽고 기괴한 느낌을 준다. 문화거리라는 관악구의 낙성대길은 사람도 문화도 없다.
새롭게 단장했지만 낯선 거리가 되어 주민들로부터 멀어져 있다. 그 탓이 그것을 누릴 줄 모르는 시민에게 있을까.
제이콥슨여사는 좋은 도시의 3가지 특성중 하나로 “보도는 계속 사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녀는 거리가 사람을 끌어들이고 활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리를 계속 이용하는 사람과 함께 거리를 지키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리의 눈, 그것은 거리를 지키고 유지하는 주인이 있다는 뜻이다. 순랏길, 관철동, 낙성대길, 그곳에 눈이 있고 계속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사람들에 의해 살아숨쉬는 풍경이, 삶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는가. 다정한 연인들이 어깨맞대고 걷지도 않고 유모차를 끌며 산책하는 가족도 없다.
서울시가 올해 추진중인 ‘걷고싶은 서울만들기사업’을 보면 서울을 온통 낯선 타자의 거리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자연스레 시간의 층들이 쌓인 거리를 전문가가 시간에 쫓기면서 디자인한 설계도면 속의 길로 바꾸려 하고 있다.
잘 만들어놓으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사람이 모여들면 거리만들기는 성공했다는 생각도 엿보인다. 거리만들기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넘긴다.
최근 어느 여성건축가는 지역의 역사문화환경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디자인하지 않은 듯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거리에 쌓인 시간의 층들, 사람들의 삶과 문화들이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디자인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지역에 밀착해 들어가면 문제는 풀린다. 진경산수화처럼 도시디자인 전문가는 그 지역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형상화해낼 때 그녀의 고민이 해결될 것이다.
서울시의 오류는 걷고싶은 도시만들기사업을 시민, 주민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다는데 있다. 월드컵행사에 대비한 외국손님맞이용 전시성이 너무나 강하다.
더럽고 낙후된 길은 정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함부로 손을 대면 제2, 제3의 순랏길과 낙성대길이 되고만다. 겉치레로 천박하게 정비된 길은 정취와 역사성, 장소성을 잃어버린다.
정비되지 않은 인사동길이 수많은 외국인들까지 찾는 거리가 된 연유는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다양한 문화업소, 시설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주된 요인이 바로 뒷골목을 포함한 거리 그 자체에 사람사는 풍경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사동에는 거리를 계속 찾아오는 사람들(시민)과 그곳을 지키는 눈(상인)이 있다.
우리 모두 서울시가 벌이고 있는 걷고싶은 도시만들기사업이 성공하길 바란다.
종로에 역사문화의 향기가 느껴지고, 도시 곳곳에 걷는 사람들의 해방구가 만들어지길 원한다. 모두 성공하여 도시가 본래 추구했던 자유와 진보가 꿈이 아니라 현실에서 실현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그곳을 이용할 시민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실패하더라도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서울시가 해주어야 할 역할은 한사람의 백걸음보다 백사람의 한걸음에 속도를 맞추면서 보행자도시 서울을 향해 시민과 함께 하는 일이다.
외국인이 보고 싶어하는 서울의 모습은 시민들의 삶이 살아숨쉬는 거리일터다. 그들만의 축제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도시를 고향이라 부르게 하자
사람에게 고향이 있다는 건 홀로 고립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삶과 연결된 뿌리를 가진다는 거다.
고향, 그속에 담겨진 집단적 기억과 정서들때문에 우리 모두 명절마다 도시를 텅비우고 고향으로 달려간다.
고향길은 현대자본주의 도시가 파괴한 공동체적 삶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에 다름 아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다. 남부여대, 도시로 몰려든 이농세대가 끝나고 그들이 길러온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 그 아이들의 고향은 도시이다.
그러나 거기엔 특별히 기억해야 할 추억이 없다. 평생 눈에 담아둘 풍경도 없다. 보고 듣는 것은 어디나 비슷비슷하다. 틈만 나면 회색빛 빌딩과 살풍경한 거리를 떠나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 그조차 어려우면 그들만의 밀실로 간다.
그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도시가 낯설게 다가온다.
길을 벗삼아 스승삼아 세상을 배우던 아이들이 사라진 거리. 계층과 세대를 뛰어넘어 평등했던 거리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 우연하고도 비공식적인 만남들 대신 비지니스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거리가 들어섰다.
거리를 잃은 아이들에게 더이상 도시는 고향이 아니다.
유목민들처럼 이곳저곳을 떠도는 도시민들, 그속에 도시는 매일매일 소모되어 가고 있다.
마구 파헤쳐지고 잿빛 건축쓰레기들이 도시를 장악하면서 도시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그토록 자랑했던 도시의 번영은 허상이었다.
최근에 서울시는 ‘걷고싶은 도시만들기’를 600년 서울을 간직한 도심과 연계시켜 도심성장관리(억제) 기본구상을 발표했다. 도심이, 종로가 역사문화의 향기 가득한 장소로 만들겠다고 한다.
도심속에 간직한 삶의 지속성과 다양성을 살려 경제적 활력도 키워가겠다고 한다. 앞서 열거했던 ‘걷고싶은 도시만들기’사업의 완성판이다.
그렇게 되면 서울의 아이들은 서울을 고향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꼼꼼히 들여다보면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 삶의 지속성과 다양성을 누가 만들어가는가. 그 삶들이 어우러지는 거리의 활기는 또 누가 불어넣는가. 행정도 전문가도 아니다.
그곳에 살고있고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이다.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은 없다. 정비되고 난 거리에 돈있는 중산층들이 들어오고 상승한 임대료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한 상인들과 주민들이 떠나야 할 수도 있다. 거리의 상가중 세얻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십중팔구를 차지한다.
삶의 지속성이 보장되기 어렵다. 월드컵은 한순간의 이벤트다. 중산층은 자본주의적 삶의 핵심이다.
거리는 마침내 다양성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한곳에 정붙이고 오래 살면서 그곳을 삶터로 일구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그 기회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거리 하나를 만들더라도 그곳의 삶을 존중하면서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설혹 보도가 파손되고 깔끔하지 않아도 좋다. 사람들의 손때 묻은 장소와 시간들을 소중히 한다면 서울은 우리 아이들에게 고향이라 불리울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다들 서로 격려하면서 오래 살고싶은 마을, 걷고싶은 도시를 만드는 일에 팔걷어 붙일 것이다.
삶의 지속성과 다양성은 순랏길과 인사동길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지속성과 다양성이 걷고싶은 도시의 근간이라면 서울시의 ‘걷고싶은 도시만들기’는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사업대상 선정부터 추진절차와 방식까지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사업의 출발과 귀결 전과정이 시민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의 눈으로 거리를 본다
‘걷고싶은 도시만들기’는 거대한 시민학습, 집단체험의 과정이다. 행정과 자본이 결합하여 밀어붙이는 도시개발과는 질을 달리한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환경을 시민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고쳐가는 도시개혁운동이다.
이 운동은 행정과 시민을 하나의 일로 일치시키는 무차별적 운동이다.
그러나 서로의 역할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행정의 역할은 운동의 조건을 제공하면서 시민들이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역할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 스스로 학습해야 하고 체험해야 한다.
우선, 학습과 체험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전략사령부가 필요하다. 이른바 테스크포스(task force)가 설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각 국실이 조직이기주의때문에 가시적 성과만들기에 급급한다면 ‘보행자도시 서울’의 꿈은 일장춘몽이 되고 만다.
테스크포스는 행정, 경험있는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기구를 통해 걷고싶은 도시만들기사업을 평가하고 현단계에 맞는 실행프로그램을 기획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지역밀착형 사업체계가 올바로 짜여져야 한다.
서울시 차원에서 해야 할 일과 자치구에서 해야할 일을 정확히 해서 각 부분의 역할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현장사업을 중심으로 효과적인 행정지원체계와 주민활동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걷고싶은 00길만들기센터’ 같은 것을 설치하여 행정지원의 창구를 마련하고 현장활동의 인큐베이터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물론 운영은 시민단체 및 주민단체가 주관하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셋째, 진행중인 일들을 평가하여 필요한 절차를 마련하는 일이다.
용역발주, 형식적인 공청회, 시공과 같은 행정절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해나가서는 안될 일이다. 예산을 따내서 기간내에 집행해야 하는 현행 사업체계로는 주민참여도 시민의 눈도 있을 수 없다. 단 하나의 사업만이라도 새로운 체계와 절차를 통해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사례를 공동으로 만들어보는데서 출발할 수도 있다.
황폐한 삶터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적당히 겉치레한다고 해서 나아질 게 없다.
다시 행정이 도심 성장관리, 걷고싶은 도시만들기를 공익이라고 설정하고 밀어붙이기한다면 보행자도시 서울의 미래는 없다.
행정과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그리는 도면을 햇빛 아래의 거리에 내놓고 함께 만들어가는 자세가 절실하다. 보행자도시 서울의 첫단추는 서울시의 손에 달렸다. (도시연대 격월간지 걷고싶은 도시 제7호/’99.9·10호에 실린 글)
* *최정한 총장은 이상주의자다. * 현실과 부닥치는 투사다.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모른다. 그는 꿈을 갖고 * 있는 몇 안되는 천진난만한 분이시다. * 우리는 그런 분들의 꿈이 하나 둘 현실로 나타나게 하고 있음을 우리주변에서 발견하게 된다. * 그는 운동권 1세대의 최후 보루다. 모두 한자리하거나 할 곳을 향해 해바라기하고 있는데, * 아직도 시민운동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 배우자도 같은 일을 한다는 것도 사실 경이롭다. * 현재 「걷고싶은 도시만들기 시민연대(약칭 도시연대)」 사무총장을 맡아 정신없이, * 동분서주하고 계시다. * 요즈음은 만나기도 힘들고, 통화하기도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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